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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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덕의 시간

지은이: 오승호

옮긴이: 이연승

펴낸 곳: 블루홀6


 

 

 

 

 첫사랑, 첫 만남, 첫 주문, 첫 입학... 우리에게 '첫'이란 단어는 늘 설렘으로 다가오기 마련. 책을 좋아하는 내게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그 옛날 짝사랑하던 남자 선배를 몰래 훔쳐볼 때처럼 늘 두근거리고 설렌다. 이번 만남 역시 그러하다. 재일 교포 3세인 오승호 작가가 블루홀 6 출판사를 통해 국내 독자에게 처음 인사한 작품 『도덕의 시간』! 고급스러운 표지 디자인과 더불어 기괴한 사건과 허를 찌르는 반전, 인간의 추악한 면까지 면밀하게 파고드는 그의 글솜씨에 책을 덮은 후에도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사건을 벌인 동기부터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책. 이 작가 꼭 기억해둘 만하다.




 

 차에 치여 뭉개진 토끼의 사체. 토끼를 담은 상자엔 빨간색 크레파스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생물 시간을 시작합니다'. 4살 여자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들어 올려져 철봉에 매달린 채 엉엉 우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철봉에 공업용 접착제를 바른 악의적인 사건으로, 아이의 등에는 역시 비슷한 낙서가 적혀 있었다. 찢어진 노트에 빨간색 크레파스로 갈겨 쓴 '체육 시간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지역 유지인 난보 씨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자살로 결론 짓고 유가족의 뜻에 따라 서둘러 장례를 치렀지만, 시체 수습 당시 미처 보지 못했던 큰 낙서가 발견된다. 불단에 누군가 스프레이로 갈겨 쓴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조그맣게 붓펜으로 쓴 '죽인 사람은 누구?' 과연 이 일련의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까?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주인공인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에게 다큐멘터리 촬영 의뢰가 날아든다. 촬영 주제는 13년 전 초등학교에서 은사를 살해한 무카이 하루토라는 복역수의 사연. 그는 강연에 참석한 300여 명의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이 있는 자리에서 미술용 칼로 마사키 선생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하루토가 달려든 동시에 그를 저지하러 달려든 미야모토 선생. 동네에서 벌어진 난보 씨 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자신의 아들 도모키가 지목된 상황에서 후시미는 무카이 하루토 사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간다. '도덕'이라는 형체도, 명분도 불분명한 애매한 단어에 휩싸인 채 휘청거리는 이 사건 끝에 숨죽인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도덕이라..."

"참으로 모호하고 그럴싸한 단어. 실상은 무기력한 주제에 마치 규칙처럼 굴려는 단어죠.

대체 누가 그런 걸 정하는 건가요?" - p409



 

 추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어쩌면, 혹시, 설마?' 하지만 이번엔 정말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이런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피 튀기는 살육도 무서운 복수심도 없이 모든 경우의 수를 제치고 내달린 결론에 그저... '뭐야, 정말?'이란 단어만 한없이 내뱉으며 당황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폭력적인 아빠와 무기력한 엄마에게 방치된 채 끔찍한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던 하루토, 박해받는 소중한 이의 모습에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직접적으로 말하고자 그 길을 선택한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이야기 중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도덕'이란 개념에 관해 심각하게 고심했던 시간. 바른 생활, 도덕, 윤리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 삶 속에 존재했던 그 개념은 과연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이었지만, 꽤 리드미컬하게 흘러간 사건 전개에 진실을 향한 갈증이 점점 더해졌던 책, 『도덕의 시간』. 오승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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