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가면 깨닫는 것들 - 이시형 박사가 권하는 자연명상
이시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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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숲으로 가면 깨닫는 것들

지은이: 이시형

펴낸 곳: 자음과모음

 


 

 

 한때, 산이 좋아 매일 아침 눈 뜨면 산으로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1달 가까이 지속한 산과의 만남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하지만, 일이 많아 피곤하다는 이유로 몇 번 늦잠을 자기 시작하니 그대로 안녕. 역시 뭐든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다. 예전엔 걸어서 10분 거리에 등산로가 있는 동네에 살다가 이제는 차를 타야 산에 갈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문만 열면 산을 만날 수 있던 그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왜 갑자기 그 소박한 추억이 떠오르는 걸까? 이시형 박사의 『숲으로 가면 깨닫는 것들』은 온 마음을 다해 산으로 향하고 싶은 열정과 에너지를 샘솟게 한다. 그래, 모두 이 책 덕분이다.


 


 

 

 2013년에 출간되었던 <이젠, 다르게 살아야 한다>의 개정증보판인 이 책 『숲으로 가면 깨닫는 것들』에는 우리가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귀한 선물이 담겨 있다. 이시형 박사의 숲 예찬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새 산 정상에 올라 싱그러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는 기분. 한국의 아름다운 산을 정신적 지주이며, 산의 깊은 맛을 보려면 혼자 올라라. 풀리지 않아 무의식 깊이 묻어둔 숙제가 산에서 어느 순간 풀릴 때가 많다. 우리는 세계를 이끌고 갈 리더라는 사실을 인식해라. 하산을 아쉬워하지 말 것! 하산은 우아하고 멋있게 하자. 하산에도 희망적, 긍정적 의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산할 즈음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한다. 행복과 사랑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고, 감사는 힐링의 기본이다. 어떤 종이든 싹이 트는 모습은 같고 만물은 서로 이어져 있다. 자연에의 경외심이 곧 힐링이다. 산에서는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며 겸손하고 따스해진다. 우리는 쫓기느라 너무나 소중한 것을 많이 잃고, 또 잊어버렸다. 산은 멈춤이오, 쉼 그 자체다.


 

 글이 굉장히 편안하고 읽기 쉬워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가슴 속에 깊이 머금게 된다.

특별한 산행을 위해 이시형 박사가 권하는 8가지 과제를 정리해보자.



 

1. 산, 자연에의 경외심, 감사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라.

2. 자연을 느끼는 시간이다.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의 감동이어야 뉴런의 소포에서 감동물질이 터져 나온다.

3. 자연과 인간을 생각해보는 시간. 생각할수록 자연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4. 자연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시간. 마음의 문을 열고 조용히 대화해보자.

5.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생각해보는 시간.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6.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 우리 모두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7. 자연 속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지금 사는 삶이 내가 정녕 원하는 인생인지 돌아보자.

8. 자연의 정기를 듬뿍 받는 시간. 세포 하나하나를 신선한 기운으로 깨우자.

 


 하나씩 읽고 보니 과제라고 숙제처럼 생각할 것 없이 일단 산에 가면 저절로 하게 될 일들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감사하며 나를 돌아볼 시간. 이때만큼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정상을 향해 내딛던 한 발, 한 발을, 온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폐 깊숙한 곳까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던 순간을, 오롯이 혼자였던 그 고즈넉한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래, 인생의 정답은 산에 있다. 다가올 주말엔 무슨 일이 있어도 산에 가자! 읽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지는 치유 에세이 『숲으로 가면 깨닫는 것들』. 이 책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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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공장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9
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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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카페, 공장

글쓴이: 이진

펴낸 곳: 자음과모음

《자음과모음 청소년 문학 079》 

 

 

 우리 여고생 시절을 떠올려보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지만, 친구와 함께여서 핑크빛 꿈을 꿀 수 있었던 시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나! 서울로 대학 가서 함께 자취하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기도 하고, 해외로 배낭여행 갈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축제 때 무대에 올라 같이 춤추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운 흑역사도 새록새록 떠오르지만, 그 모든 게 청춘이기에 아름다웠다. 한데, 이번에 만난 책 『카페, 공장』은 스케일이 다르다. 살기 좋지만 조금 심심한 시골에 사는 여고생 4명이 버려진 공장에서 카페를 차리고 무허가 영업을 한다는데, 어라? 이거 시작부터 재밌을 조짐이 솔솔!

 

 

 

 

 오동면에 사는 영진, 정이, 민서, 나혜는 오랜 단짝 친구다. 어느 주말 서울로 놀러 간 사총사는 홍대에 있는 힙하다는 카페에 방문했다가 비싼 금액과 기대에 못 미치는 분위기에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동네 위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빈 공장과 비슷했던 카페 분위기를 떠올리며 장소를 물색하던 사총사 앞에 거짓말처럼 물과 전기가 공급되는 건물이 나타나고 그날부터 아이들의 귀여운 서리가 시작된다. 엄마가 외할머니께 물려받은 귀한 돗자리, 예쁜 찻잔, 밥상, 의자, 테이블 등등. 처음엔 그저 자신들의 아지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소녀들은 본격적으로 카페 영업을 해보기로 한다. 비록 시작은 믹스 커피였지만, 신선한 원두를 공수해 핸드 드립 커피를 단돈 1,500원에 팔고 집에서 구워온 케이크까지 구비하며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카페.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게 무허가라는 것을! 그저 조용히 장사하며 소녀들의 소꿉놀이로 끝났다면 더 좋았을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유명해진 '카페, 공장'은 주말이면 쉴 새 없이 외지 손님이 몰려드는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하는데... 이런, 왜 슬픈 예감을 틀린 적이 없나... 행복한 비명을 지르던 사총사 앞에 불청객이 등장! 조물주보다 한 수 위라는 건물주 납시오! 과연 소녀들의 아지트 '카페, 공장'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소꿉장난처럼 시작한 카페지만, 금전적 어려움, 메뉴 추가, 디자인, 진상 손님, 먹튀,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양아치 처리, 무허가 영업, 길냥이 돌보기 등등 카페를 운영하면 벌어질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사장이 4명이니 재무 담당, 바리스타, 디자인 담당, 디저트 및 잡일 담당이 서로 불만이 쌓여 옥신각신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정말 잘 헤쳐나갔다.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하는, 꿈처럼 펼쳐지는 소녀들의 무허가 영업 카페의 핑크빛 승승장구.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말이 어떻게 될까 불안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재밌으면서도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 절묘하게 빛을 발하는 이진 작가의 밀땅 덕분에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이야기가 탄생했다.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어른이 읽어도 재밌는 작품! 꿈많던 소녀 시절을 떠올리며 시원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으면 너무 좋은 이 소설 『카페, 공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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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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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빛나는 순간

지은이: 파울로 코엘료

옮긴이: 박태옥

그림: 윤예지

펴낸 곳: 자음과모음

 

 

 

 <연금술사>, <브리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등 다양한 작품으로 한국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파울로 코엘료가 이번엔 다정하고 따스한 에세이를 선보였다. 책날개에 실린 사진은 보니 어찌나 표정이 온화하고 행복해 보이는지, 즐거운 중년에 접어든 작가의 생활을 상상하게 된다. 짧지만 의미 있는 인생의 여러 조언과 응원, 관심과 사랑이 담긴 이 책. 읽다 보면 마치 누가 옆에서 내 등을 토닥이며 기운 내라고 위로하는 듯하기도 하고, 미움과 질투 같은 나쁜 감정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 해로운 존재라고 타이르는 듯하기도 하다.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이 살아온 아름다운 인생의 보석 같은 찰나의 순간을 우리에게 나눠주고 싶었던 걸까? 이 책 『내가 빛나는 순간』에서는 그의 그런 진심이 물씬 묻어난다.

 

 

 

 

 복수는 달콤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니 용서하라. 무언가 성취하고 싶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 집중하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하되 그걸 증명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인생은 흥미진진하다. 무슨 일을 하든, 지구상의 어느 누구든, 세상의 중심이자 역사의 주역은 바로 나인데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양에 따라 맛을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소금, 추억은 그 소금과 같으니 너무 많으면 없으니만 못하다. 사랑해서 잃는 게 아니라, 늘 망설이다가 잃는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에만 귀 기울이면 인생은 비참해진다. 사랑은 믿음이지 교환이 아니다. 쓸데없는 것들을 싹 내다 버리면 바로 행복해진다. 배움에 끝이란 없고, 오로지 정진뿐이다. 평가와 인정은 가혹한 함정이니 걸려들지 말아라.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남기는 따스한 일기장처럼 파울로 코엘료의 에세이는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나라는 소중한 존재가 세상이 정한 잣대나 타인의 불친절함에 작아지지 않도록, 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고 늘 푸른 상록수처럼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글. 글을 통해 진심을 담아 전달하고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이보다 위대한 일이 또 있을까? 뼈 있는 바른 말이지만, 속상하거나 불쾌하지 않은 건 정말 이 글을 읽는 이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썼기 때문일 거다. 더불어 페이지마다 예쁘게 담겨 있는 그림의 힘도 컸다. 글과 함께 어우러진 예쁜 그림을 보며 잠시나마 근심과 걱정을 잊고 날 응원하며 보듬어주는 이 책을 기쁘게 음미할 수 있었다. 응원이 필요한 이에게,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이에게, 지금은 서먹하지만 화해하고 싶은 이에게,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에게 이 책을 꼭 선물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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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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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린 괜찮아

지은이: 니나 라쿠르

옮긴이: 이진

펴낸 곳: 든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옷가지, 방 한편에 쌓아둔 책. 소녀는 홀로 남은 기숙사 방 침대에 올라선다. 아마도 벽이 있을 그곳엔 고향 집에서 마린이 즐겨 찾던 바다가 펼쳐진다. 마린과 메이블의 추억이 있는 그곳, 엄마와 아빠가 만났던 그곳, 엄마가 자신을 꼭 안아줬을 그곳, 젊은 시절 그 바다를 한껏 누비다가 할아버지가 마린을 홀로 두고 영원히 잠든 그 바다. 겨우 지탱하듯 서 있는 마린의 뒷모습이 하염없이 안쓰러워 가슴이 저릿하다. 한쪽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린. 넌 지금 울고 있니?

 

 

 

 미혼모였던 어머니를 어린 시절 잃은 마린은 줄곧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서로의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지키며 나름 행복하게 살던 마린. 그런 마린에게 메이블은 유일한 단짝이자, 소울메이트이자 진짜 사랑이었다. 할아버지의 위스키를 몰래 챙겨 나왔던 새벽, 마린과 메이블은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에서 서로를 따스하게 감싸 안고 입술을 포갠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그 순간, 그저 인간이 한 인간을 좋아하는 그 느낌이 낯설거나 싫지 않았다. 뉴욕으로 대학을 가게 된 마린. 할아버지는 이미 두 학기분의 등록금을 완납하고 앞으로 마린이 사용하게 될 생활비를 담은 현금 카드를 내민다. 대학을 가면 메이블과 멀리 떨어지게 되는 상황. 하지만, 이런 이별을 원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바다에서 봤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끝으로 더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린에게 닥친 놀라운 진실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차게 마린을 잠식한다. 할아버지가 숨겨왔던 비밀. 경찰서 뒷문으로 빠져나간 마린은 그 길로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뉴욕으로 떠난다. 아직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어 발길 닿는 대로 잡은 모텔은 마치 인생의 실패자들만 모인 듯 암울하고 절망적이다. 그 후 무사히 대학교로 간 마린은 룸메이트 한나를 만나고 차츰 생활에 적응하는 듯하지만, 마린에겐 고향에 두고 온 집과 아직 정리하지 못한 메이블과의 관계가 남았다.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끊임없이 마린에게 연락했던 메이블. 춥디추운 겨울, 기숙사에 홀로 남게 된 마린을 메이블이 찾아오며 그들의 이야기, 그리고 이 소설은 시작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 회상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잔잔한 리듬 속에 마치 원래 그랬다는 듯이 힘을 빼고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르게 되는 이야기. 그렇게 난 마린이란 아이의 아프지만, 잊지 못할 소중한 시절을 함께했다.

 

 

 

 

 

 

 

'나는 나의 외로움이 두려웠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기막히게 속였던가.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기막히게 설득했던가. 난 슬프지 않다고, 난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두려웠고 할아버지가 낯선 사람이었다는 게 두려웠다.

내가 할아버지를 너무도 미워한다는 게 두려웠다.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원한다는 게.

그 상자들 안에 있는 것들과 언젠가 내가 알게 될 것들, 그리고 그 상자들을 잊고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내가 잃을 수도 있는 기회가.

서로의 방문을 열어보지 않고 살았던 우리의 방식이 두려웠다.

서로를 결코 편안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스스로에게 했던 거짓말들이 두려웠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내게 했던 거짓말들이.

식탁 밑에서 우리의 다리가 부딪쳤던 게 아무 의미도 없을까 봐 두려웠다.

빨래를 개어놓았던 게 아무 의미도 없을까 봐 두려웠다.

차와 케이크와 노래들,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을까 봐 두려웠다.

...

할아버지가 나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봐 두려웠다.' - p251~253

 

 

 

 소설 끝자락에서 마침내 터져 나온 마린의 진심에 가슴이 먹먹해 한참을 쓸어내렸다. 그래, 넌 많이 외롭고 두려웠겠구나. 메이블이 돌아간 빈 기숙사에서 우두커니 있는 마린을 보며 지독한 고독과 저릿한 아픔을 느꼈지만, 이런 고통도 잠시. 읽으며 펑펑 울어버린 감동적인 순간이 등장한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려고 마린을 찾아온 메이블의 가족. 그리고 메이블의 엄마가 마린에게 전한 진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멀고 먼 곳에서 태어난 타인이 서로 만나 너와 내가 되고, 소중한 존재가 되고, 서로를 아끼고 걱정하며 가족이란 이름으로 손을 잡는다. 너무나 간절했기에 더 두려웠을 마린. 그런 마린을 놓지 않고 지킨 메이블. 마린을 딸로 받아들인 메이블의 엄마. 그들이 빚어낸 인생의 모든 순간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슬픔과 고통마저도 어떤 편견이나 잣대 없이 있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 드러내지 않아도 모든 걸 알 수 있었던 건 독자가 마린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기막히게 섬세한 문체로 표현해낸 작가의 필력 덕분일 거다. 청소년 문학이라지만, 여느 멋진 소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깊이 있고 탄탄하며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 『우린 괜찮아』, 이 멋진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듯하다. 그리고 분명 우리의 만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다. 머지않아 난 이 책을 또 펼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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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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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지은이: 김솔

펴낸 곳: 아르테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묵직함이 느껴지는 제목과 달리 봄날 개나리 빛 노란 배경에 살포시 놓인 토끼 인형이 사뭇 낯설다. 김솔 작가의 짧은 소설. 단편 모음집이란 뜻일까? 책장을 열어보니 이건 여느 단편집과 굉장히 다르다. 짧게는 한 장, 길어도 고작 몇 장인 짧아도 너무 짧은 이야기들. 1부와 2부로 나뉜 이 책엔 총 40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역사, 과학, 윤리, 종교, 철학, 신화 등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김솔 작가는 자신이 품고 있는 그 다양한 상식을 팬 위에 버터처럼 지글지글 녹여 맛있는 토스트를 구워낸다. 한 입, 두 입 냠냠 먹다 보면 어느새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게 되는 소설. 짧지만 강렬하고 참으로 알차다.

 

 

 

 

 

 생신을 맞은 105살 할머니, 8년 16일 터울의 쌍둥이, 사람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끼리, 딸의 연애 문제로 사이가 멀어진 부녀, 일생 최고의 평점을 매기게 될 음식과 만난 미슐랭 가이드 평가원, 사막에서 샌드 보드를 타러 이카로 향하다 카페에서 노인과 대화를 나눈 청년, 비행기 추락으로 탑승객 전원이 실종된 사고에서 기적처럼 재앙을 피한 사람들과 그들을 취재하는 언론, 한 장짜리 강렬한 소설 반야심경, 유품 정리인이 전하는 고독사 이야기, 성폭행 사건 용의자인 일란성 쌍둥이의 교묘한 작전,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문자를 남기는 남자 등등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대체 김솔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프랑스어로 친구란 빵을 함께 나누어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모든 인간은 모든 인간의 꿈으로 빚어져 있다.'


 

 촌철살인 같은 뼈 있는 말을 날리기도 하고, 때론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었다가, 똑똑함이 뚝뚝 묻어나는 문장으로 명석함을 뽐내는 김솔 작가.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혹은 책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짧은 단편으로 탄탄한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그런 면에서 김솔 작가의 글은 상당히 완성도가 높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할 여지를 준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사연을 접하고 이 책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과연 만날 수나 있었을까 싶은 여러 인물의 삶을 엿본 시간.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는 리듬 속에 바삐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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