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 33가지 죽음 수업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 33가지 죽음 수업
데이비드 재럿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0년 10월

제목: 이만하면 괜찮은 죽음

지은이: 데이비드 재럿

옮긴이: 김율희

펴낸 곳: 윌북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에게는 '안락한 삶'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던 그분들에게 '편안한 죽음'은 어쩌면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삶의 질이 향상되며 나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웰빙' 열풍이 몰아쳤고 자연스레 우리의 생을 곱게 마무리할 '웰 다잉'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잘 죽는다는 것. 죽음은 늘 두렵고 피하고 싶은 존재이기에 온전히 마주하기 힘들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용기를 내 언젠가 다가올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계획해보기로 했다. 40년간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노인 의학 전문의의 기록, 『이만하며 괜찮은 죽음』. 독자를 매섭게 훈계하거나 어떤 교훈을 의도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지만, 담담하게 뚝 던지듯이 풀어놓는 그의 지난 세월과 곳곳에 도사린 여러 죽음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의학이 가부장적이었던 과거에는 환자들이 의사를 극도로 존경하며 아무 말 없이 치료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였던 시절.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의사와 치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식 또한 상당히 달라졌다. 그 역동의 세월인 40년간 환자를 치료하며 삶의 명암을 함께 배운 의사 데이비드 재럿은 죽음을 목격한 여러 순간을 독자에게 전한다. 손가락이 베어 치료하러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 그대로 세상을 떠난 99세 노인, 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누운 채로 자신이 배설한 설사와 대변에서 뒹굴다가 53일 만에 죽은 펠리페 2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33가지 주제로 다양한 죽음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의대생 시절 인도에서 목격했다는 수많은 죽음. 병원 앞에 잠자듯 죽어있던 개, 탯줄을 자르고 남은 부위에 소똥을 얹는 비극적인 전통 때문에 생긴 신생아 파상풍, 산모를 살리기 위한 잔인한 태아 살인, 병원에 길게 줄지어 선 비위생적인 상태의 환자들... 그 끔찍한 광경이 너무나 생생하여 가슴이 먹먹했다. 1983년 동성애자들 사이에 생기는 이상한 질병을 처음 접한 에피소드도 특별했다. 많은 환자가 목숨을 잃은 후에야 알게 된 병의 정체는 '에이즈'. 병을 알리고 치료제를 개발하느라 고군분투했던 당시의 상황과 더불어 HIV 바이러스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상당히 흥미로웠던 부분!

이 책을 쓴 의사 선생님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치매를 앓던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침대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됐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라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은 그 고통스러운 상실의 감정.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는 어떻게 죽었는지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죽음보다는 삶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과연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자문했던 시간. 그렇구나! 저자가 자신이 지켜본 수많은 죽음을 이토록 공들여 전한 이유는 어쩌면 잘 죽기에 앞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지! 이 책을 손에 쥐고 있던 며칠간, 그 어느 때보다도 삶과 죽음에 관해 곱씹고 고민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직 이 숙제의 답을 찾진 못했지만, 내 앞에 놓인 소중한 '오늘'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해본다. 그 '오늘'이 모여 내 삶과 죽음의 방향을 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곳으로 인도해줄 테니까...

오늘의 기분은 카레 - 카레가 먹고 싶어지는 에세이!

오늘의 기분은 카레 - 평범한 듯 특별한
노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제목: 오늘의 기분은 카레

글, 그림: 노래

펴낸 곳: 위즈덤하우스

타닥타닥, 경쾌하게 도마를 울리는 소리가 나면 이내 큼지막하게 썰린 감자, 당근과 양파가 그릇에 소복하게 쌓인다.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지글지글 육즙이 배어 나오도록 고기를 볶고 감자와 당근 그리고 양파를 차례로 넣은 후 볶는다. 촤아악 소리를 내며 채소에 있던 물기가 증발하고 달짝지근하게 익으면 물을 붓고 잠시 보글보글. 때가 됐다 싶으면 미리 따뜻한 물에 걸쭉하게 풀어두었던 카레 분말을 싹싹 털어 넣고 꾸덕해진 국물을 나무 주걱으로 휘휘 저으며 조금 더 끓이면 카레 완성! 이것은 그 옛날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클래식 카레. 오뚜기 카레 매운맛으로 끓여낸 단순한 카레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나고 먹고 싶어지는 마성의 음식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내게 유일한 카레였던 그 한 그릇이 지금 이 순간 미치도록 먹고 싶어 입에 침이 고인다. 이 야심한 밤, 갑자기 웬 카레 타령이냐고? 이게 다 이 책 때문이다! 카레와 사랑에 빠진 작가의 카레로 시작해서 카레로 끝나는 에세이 『오늘의 기분은 카레』. 당신의 기분은 오늘 어떤 카레인가요?

2016년 여름, 카레의 매력에 빠진 뒤로 매년 300번 가까이 카레를 먹는다는 노래 작가. 30번이 아니라 300번이다! 이렇게 카레를 좋아할 수가 있다니! 역시 뭐든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주 접하고 연구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는 법. 노래 작가는 그렇게 카레 전문가가 되었다. 카레에 관한 독립출판물을 만들고, 카레 굿즈를 만들어 팔고, 카레 여행을 떠난다는 노래 작가에게 카레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소울메이트다. 그날의 기분과 어울리는 카레를 연결하여 풀어내는 이야기가 제법 흥미롭다. 작가가 좋아하는 단골집 카레 메뉴를 글로 느끼며 머릿속으로 한참을 상상하다 책 뒤편에 실려 있는 사진을 발견하는 순간 눈앞에서 폭죽이 팡팡. '우와, 대박!' 감탄사를 연발하며 침을 꿀꺽 삼켜보는 짧은 순간에 소박한 행복에 가슴이 따스해진다. 그리고 그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나까지 카레에 관한 사랑과 집착이 한층 짙어지는 기현상을 경험했다.

내 인생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저녁 6시 이후에 금식하는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건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인생에 대한 마지막 예의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 카레를 끓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 더 정확히는 카레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가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카레라이스를 한입 가득 넣고 음미하고 싶다. 나 지금 배고픈가? 아닌데... 나는 분명 카레가 먹고 싶다. 그리고 이건 전부 이 책 때문이다. 천천히 마음을 채우고, '꼭'을 꼭 붙이고, 쓸쓸함을 마주하고, 씩씩하게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이겨내고, 평범하고 지날수록 소중하며, 마음을 잇고, 다툴 때마다 잔잔해지며, 정다운 쓸모가 되고, 미칠듯한 너의 하루는? 정답은 카레! 카레로 시작해서 카레로 끝나는 『오늘의 기분은 카레』. 책에 대한 나의 감상도 기승전 카레로 마무리! 아, 먹고 싶다. 지금 당장!

[인스타마케팅] 아무나 쉽게 따라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아무나 쉽게 따라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황규진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9월

제목: 아무나 쉽게 따라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지은이: 황규진

펴낸 곳: 원앤원북스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단 한 번을 만났더라도 오래도록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들 자신만의 특별한 분위기와 매력을 지니고 있었던 듯! 그래, 이건 정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장점이다. 그런 매력은 SNS에도 자연스레 녹아들어 매력을 풍긴다. 게시물을 굳이 많이 올리지 않아도 수많은 팔로워를 모은 계정이 있는가 하면, 재밌는 입담과 소통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계정도 있다. 그런 매력적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꾸리는 법.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모든 지식을 책으로 가장 먼저 습득하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을 살려 이번엔 인스타그램을 주제로 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아무나 쉽게 따라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인스타그램을 활용해 사업을 할 게 아니더라도 유용하고 알찬 비법이 가득 담겨 있어 얻을 게 많은 책이다.

사람들은 왜 인스타그램에 열광할까? 일상과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여러 SNS 중에서 인스타그램은 초창기부터 오로지 사진을 예쁘게 찍고 쉽게 편집할 수 있는 기능에 집중해왔으며 연락처 연동과 관심사에 따른 해시태그 분류가 활성화되어 있어 SNS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고 한다. 포스팅은 가급적 자주 해주는 게 좋고, '좋아요'와 댓글 등 참여율이 높은 콘텐츠를 더 자주 노출해준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은 관심사, 관계, 포스팅 시간 등을 기준으로 삼아 유저의 과거 '좋아요'를 분석하여 선호할만한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보여준다니 참 똑똑한 시스템인 듯. 해시태그를 적극 활용하고 검색에 유리한 매력적인 프로필을 만들 것! 같은 색감과 느낌, 같은 주제와 피사체를 올리는 통일성을 갖춰야 나만의 분위기가 완성된다니 차근차근 도전해보자. 자신만의 콘셉트를 가지고 양질의 콘센트로 꾸준히 소통하면 결국 많은 팔로워를 얻게 될 거라고 하니 포기하지 말 것! 모바일에서 몰입감을 높이는 세로 콘텐츠를 활용하고 보정 앱을 통해 더 예쁘고 선명한 사진을 올려보자. 결국 인스타그램의 자신만의 감성이 가장 중요하니 내가 가장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와 순간을 고려하여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게 필수!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여러 계정을 실사례로 들어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보정 앱이나 글쓰기와 해시태그 선정 같은 필수적인 스킬도 아낌없이 알려주어 이 책 한 권이면 인스타그램 고수에 성큼 가까워질 것 같다. 물론 얼마나 제대로 활용하고 성취하는지에 따라 각자 걸리는 시간을 다르겠지만 구체적으로 배우고 나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뭔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취미 계정이든 비즈니스 계정이든 나만의 인스타그램을 알차게 꾸며보고 싶은 모든 분께 도움이 될 책이니 추천! 책에 담긴 내용을 차근차근 따라 해보며 인스타그램 계정 잘 꾸려보겠습니다!

앨리스 더 원더 킬러 - 예상치 못한 반전이 돋보이는 소설!

앨리스 더 원더 킬러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9월

제목: 앨리스 더 원더 킬러

지은이: 하야사카 야부사카

옮긴이: 문지원

펴낸 곳: 블루홀6

어린 시절 수많은 소녀가 이상한 나라에 간 앨리스 이야기에 흠뻑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거다. 그 덕분인지 어른이 되어서도 앨리스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신비로운 존재로 남아 있고, 그런 인기에 힘입어 여러 스핀오프 작품이 자주 출간되곤 한다. 한데, 앨리스의 팬인 만큼 다양한 작품을 읽어봤지만 추리소설의 대가 블루홀6 출판사의 신간 『앨리스 더 원더 킬러』의 표지를 보는 순간 흐르는 짜릿한 전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가상현실'을 접목한 본격 미스터리라는 띠지 문구답게 이번 세계에서는 수수께끼와 검붉은 피로 얼룩진 살인사건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거 정말 가상현실 맞나? 너무 생생해서 가상현실이 아닌 진짜 동화 혹은 좀 특별한 현실 같은 이야기!

아빠처럼 탐정이 되고 싶은 소녀 앨리스. 열 살 생일을 맞이한 앨리스에게 선물 상자 안에 담긴 메시지가 날아든다. 늘 가는 그 오두막에 최고의 수수께끼를 준비해두었다는 아빠의 메시지. 기쁜 마음으로 향한 그 오두막에서 앨리스는 수상한 인물을 만난다. 아빠의 친구라는 코모란트 이그리트. 그가 내민 '화이트 래빗'이라는 토끼 귀 헤드기어를 끼고 전용 알약을 먹으면 가상 현실로 빠져든다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리즈를 변형한 수수께끼 게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앨리스는 소용돌이치며 블랙홀로 빠져든다. 동화 속 세상 같은 가상 현실로 떨어진 앨리스는 몸의 크기를 조절하는 쿠키와 시럽을 사용해 방을 탈출하는 수수께끼를 시작으로 아기 돼지를 자식처럼 키우는 공작부인, 모자 장수 살해 현장, 험프티와 그를 감시하던 트럼프 병사, 뭐든 제멋대로인 하트 여왕 등을 만나며 차례로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하지만 끝난 줄 알았던 게임이... 실은 전혀 다른 결말로 치닫고 있을 줄이야! 모든 수수께끼를 풀고 이겼다고 생각했던 앨리스는 과연 정말 이긴 걸까?

별다른 반전 없이 동화 속 수수께끼를 변형한 이야기가 차례로 나와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될지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실타래처럼 얽혔던 진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자 망연자실한 심정이랄까? 앨리스가 풀었던 수수께끼는 어쩌면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되도록 순수하게 깔아둔 밑밥이 아닐지. 추리 소설이기에 당연히 반전을 예상해야 했건만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놓고 수수께끼 풀기에만 집중했던 나는 결국 큰 그림을 알아채지 못했다. 근데 과연 이 결말을 예상한 분이 계시려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내용을 살짝 비튼 수수께끼에 엄청난 반전을 가미한 소설 『앨리스 더 원더 킬러』! 예상치 못한 진실이 기다리는 끝을 향해 달려보실 분들께 추천합니다!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 - 모든 영어 단어에는 사연이 있다!

걸어 다니는 어원 사전 - 모든 영어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마크 포사이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제목: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

지은이: 마크 포사이스

옮긴이: 홍한결

펴낸 곳: 윌북

영어 단어는 어렵다. 하지만 평생 써먹을 수 있게 제대로 외우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대로 외워야 할까? 연구진이 치밀한 분석을 통해 만든 여러 단어책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두와 어미를 기준으로 비슷한 형제 단어를 외우며 단어량을 확장하는 방식인데, 실은 이것도 직접 해본 결과 상당히 효과적이기는 했으나 곧 한계에 도달했다. 그럼 생각을 조금 달리해서 접근해보자.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수한 단어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든 걸까? 모든 단어는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 사연, 즉 어원을 파헤치며 단어를 알아가면 흥미로운 역사와 함께 여러 단어를 연상 기법으로 떠올리게 된다. 이번에 만난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은 더 건강한 영어 지식의 축적을 위해 튼튼한 뿌리가 되어줄 알찬 책이었다.

잘못(?) 질문했다가는 몇 시간이고 붙잡혀 단어의 어원에 대해 듣게 될 테니 조심하시라! 무슨 얘기인고 하니, 이 책의 저자 마크 포사이스는 영어와 지독한 사랑에 빠진 인물이라 단어에 관해서라면 할 얘기가 쌓이고 쌓였다. 어린 시절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선물 받은 후 줄기차게 단어 외길을 걸어온 저자는 그 대단한 지식을 책으로 펴내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일단 잘못 걸리면 넋 나간 채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 조심해야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결국 잘못 걸렸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이미 저자의 화려한 글 솜씨에 발목이 잡힌다. 마치 음성 지원까지 되는 인공지능 시스템처럼 옆에서 누군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듯한 착각까지! 근데 이거 읽다 보니 재밌어서 자꾸 조금만 더 읽어 볼 생각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자주 즐겨먹는 초록색 열매 아보카도가 실은 아즈텍족이 고환이라 불렀던 단어에서 유래했다니... 마침 아보카도를 먹고 있던 나는 어쩐지 찝찝한 마음에 입을 헹궈야 했다. 'black'이란 단어가 처음부터 검은색은 아니었다? 게르만어로 '불에 탄'이란 뜻인 이 단어는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이 하얗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까맣기도 하여 '창백하다'와 '어둡다'라는 뜻으로 혼용되다가 차츰 후자의 뜻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애주가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술의 역사'도 흥미로웠고 대담하게 쓴 '성격 속 오류' 부분도 신선했던 이야기보따리!

재미있어서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던 책이지만, 진도는 더디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작가가 입을 열면, 아니 글을 쓰면 이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마치 여백이 뭔가요? 그게 필요해요?'라며 페이지를 다 채워버리겠다는 열정으로 쏟아내는 단어의 사연들. 친절을 넘어서 편집증 수준의 치밀하고 장황한 단어 대서사극이 펼쳐지니,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하루에 읽을 양을 쪼개 천천히 읽거나 생각날 때 한 꼭지씩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나처럼 영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겐 필독서가 아닐까 싶은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 단어의 어원을 훑어가다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단점에 키득거리며 단어에 숨은 사연을 엿보는 특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