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 - 하루 한 장 내 마음을 관리하는 습관
스칼릿 커티스 지음, 최경은 옮김 / 윌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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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

지은이: 스칼릿 커티스 외

옮긴이: 최경은

펴낸 곳: 윌북




'당신의 마음에 관해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쓰세요'

누군가 짤막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저렇게 말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첫 문장을 애타게 기다리며 깜박깜박 나를 재촉하는 '커서'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도 있고... 어쩌면 물꼬라도 트인 듯 마음에 담아두었던 모든 말을 순식간에 털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 이 책을 엮은 스칼릿은 17살 때 처음으로 미쳤다는 말을 듣고 우울증, 불안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3단 콤보를 지닌 채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이다. 그녀는 비슷한 아픔을 지녔지만, 용기 있게 슬픔에 대처하고 마음을 돌본 70여 명의 동지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말로 차마 표현하기 힘든 그 감정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이겨내는지, 심심한 위로와 응원 가득한 그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스칼릿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이 우정의 책을 완성했다.





책의 구성이 좀 특이하다. 글이나 영상에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도 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경고하는 '트리거 워닝'에 관한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총 5개로 나뉜 챕터마다 스칼릿의 글이 시작을 연다. 그만큼 답답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걸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스칼릿은 털어낼 수 없는 우울과 고통이란 감정을 어떻게든 완화하고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듯하다. 어쩌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장 공허하고 괴로운 법. 다양한 직업과 고민을 지닌 이들이 자신의 사연과 애정 어린 조언을 전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삶을 감당하기가 조금 수월해진다고 한다. 신체 건강을 신경 쓰듯, 마음도 건강하게 돌봐야 하며 긍정적인 습관과 일상을 유지해라. 그리고 '해로운 관계에서 벗어나라'는 이 조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 건강한 생각을 우울하게 좀먹는 해충 같은 존재가 없는지 잘 살펴보고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가장 소중한 건 자신이니까! 문서를 삭제하듯 생각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니, 더 많이 이야기하고 듣고 나누고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울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조금씩 치유해갈 수 있다.










"결국 도움을 청한 것이

내 평생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 p304





'주변에 너보다 힘들고 괴로운 사람 많아. 넌 아무것도 아니야.' 흔히 위로라고 건네는 이 말은 건넨 이의 의도와는 달리 가시가 되어 상대를 할퀸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사람에게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니. 마음이 지닌 고통과 힘듦의 정도에 차이란 있을 수 없다. 마음이 아프면, 아픈 거니까. 이 책은 위로의 말을 찾기가 어렵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길 권한다. 다른 사람이 불행해서가 아닌, 이렇게 괴롭고 힘든 건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기에 위로받는 느낌. 때로는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보다 진심과 애정을 담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루를 살아낼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고통과 동거하며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까지 나도 당신도 혼자가 아니니, 부디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내일은 웃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혼자라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울적한 날, 『우울할 때 곁에 두고 읽는 책』이 큰 위로가 되어 줄 거다. 부디 한 장씩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시길! 당신은 혼자가 아니란 걸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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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SF #2
정세랑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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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SF #2

글쓴이: 정세랑, 전혜진, 박문영, 이지용, 이다혜, 최지혜, 정소연, 문이소,고호관, 김혜진, 손지상, 황모과, 배명훈, 유만선, 이은희, 송경아, 문지혁, 김상효, 황성식, 듀나

펴낸 곳: 아르테




SF라면 약간 심드렁했던 나와 같은 독자들은 이 잡지를 펴는 순간 뜨끔하게 될 거다. 국내 유일의 SF 무크지 『오늘의 SF #2』. <보건교사 안은영>을 비롯한 다수의 흥미로운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정세랑의 인트로는 송곳처럼 따끔하다. 'SF 작가들은 반 이상의 리뷰가 "SF는 싫어하지만..."으로 시작하는 것에 유감을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네, 그렇습니다! 'SF를 싫어하지만...', 'SF에는 그다지 관심 없지만...'으로 리뷰를 시작했던 1인이 바로 접니다. 취향의 문제라고는 하나,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는 일침에 정신을 차린 나는 이번 기회에 SF라는 신비로운 장르와 좀 친해져 보기로 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사실 SF를 싫어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정세랑 작가의 강렬한 인트로를 지나, 에세이와 크리틱 그리고 인터뷰를 넘어서면 검은 종이에 하얀 글씨로 인쇄된 SF 단편과 중편 소설이 등장한다. 살면서 '수진'이란 사람을 여섯 명 만났다는 미정. 그녀가 복제 인간 클론의 판매 영업에 뛰어드는 <수진>, 편안한 임종이라는 소재로 감동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 불규칙적으로 숫자를 입력하는 끔찍한 삶에 처한 남자의 이야기 <0에서 9까지>, 인류의 쓰라린 종말을 간접 체험한 <프레퍼>, 내가 생각했던 SF 장르와 가장 유사했던 <인터디펜던트 바로크>, 배에서 태어난 소녀의 신비로운 인생을 찬찬히 함께했던 <스위트 솔티>, 이것은 용비어천가인가, 청산별곡인가! 시조를 읊듯 운율이 살아있는 <임시 조종사>. 7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또 다른 인터뷰와 칼럼 그리고 리뷰가 이어진다. SF 장르의 선두주자들이 SF라는 장르에 관해 다양한 형식으로 논하는 글을 읽다 보니 슬그머니 이런 마음이 생긴다. 'SF라는 장르, 제법 재밌을지도?!'










모르는 사람 많은 유명인이라는 듀나 작가는 '소재만큼이나 소재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라고 SF를 이해하며 끊임없이 자기 세계에 관한 사고 영역을 넓혀가는 SF 소설 장인이다. 김창규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SF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거짓말'일지도 모르겠다. 전혜진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SF의 불모지'라는 말이 무색하다. 한국 SF 소설은 1920년대에 시작하여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창작이 이루어졌다는데, 아니 대체 누가 SF의 역사가 짧다는 거야? 아는 듯하면서도 전혀 아는 게 없었던 알쏭달쏭 신비로운 SF의 세계. 우주 식민지와 외계인이 등장해야 SF인 줄 알았던 나의 무지함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뭐든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법! (물론 알면 알수록 정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만...).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자네, SF 소설 한번 읽어보겠나?'...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Yes!'. 『오늘의 SF #2』 덕분에 SF와 나는 오늘부터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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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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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옛이야기의 힘

지은이: 신동흔

펴낸 곳: 나무의철학




어린 시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래 동화를 참 재밌게 읽었다. 당시에는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 이야기 속에 내포된 숨은 뜻이나 폭력성의 강도를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흥미롭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동화의 초판 원작과 숨은 뜻, 그리고 그 잔인한 폭력성을 깨인 눈으로 마주하니 옛이야기라는 게 참 만만하게 볼 내용이 아니더라. 그때에 이어 또 한 번의 신선한 충격! 화자와 해설자에 따라 이야기가 굉장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이번에 제대로 느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구비설화 전문가이자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신동흔 저자. 2019년 1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 출연하여 옛이야기의 숨은 가치를 알려 큰 화제를 모았던 저자가 방송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엮어 『옛이야기의 힘』이라는 책을 펴냈다. 신비로운 탐험이 펼쳐질 듯한 표지 디자인에서 이미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 코로나와의 오랜 사투에 지쳐 울적한 마음을 찬찬히 어루만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관계'를 탐구하며 치유하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야기와 인간>, <성장과 독립>, <호모 에로스>, <세상과의 대면>, <성공과 행복>. 이렇게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시작한 옛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다. 그 옛날 천일야화의 흉포한 왕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 여지없이 펴든 이 책은 인자한 할머니의 목소리로, 때론 무섭도록 냉철한 심판자의 목소리로, 때론 듣는 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자가 어린 시절 들었던 가장 무서운 이야기로 꼽은 여우 누이는 내 기억에도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들 셋이 있던 다복한 부잣집에 여우가 딸로 둔갑하여 태어난 후, 매일 가축의 간을 빼먹다가 나중엔 가족까지 잡아먹었다는 무서운 이야기. 어떤 이야기든 생존자는 있는 법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막내아들은 부모와 형들이 죽은 흉가를 살피러 갔다가 여우 누이를 맞닥뜨리고, 현명한 부인의 조언대로 뒤로 병을 차례차례 던지며 마침내 여우 누이를 처단한다. 누이가 범인이란 아들들의 말을 믿지 않고 딸을 감싸고 돌았던 부모. 그런 부모가 자식을 여우처럼 키우고 결국 그 자식에게 해를 입곤 한다. 옛이야기이지만, 현대적 상황과 찰떡같이 맞물려서 근래에 쓰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랍다. 당나귀 가죽을 쓰고 숨어 살던 공주나 까마귀 혹은 야수로 변했던 왕자의 모습은 '관계'로 인한 상처를 뜻한다고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에서 홀로 웅크려있던 순간이 있지 않은가? 상처 입고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를 옛이야기에서 그렇게 표현한 거라니, 알면 알수록 진하게 우린 사골국처럼 깊은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독일어로 '상추'를 뜻하는 라푼첼.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녀가 실은 라푼첼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라니, 이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모성의 어두운 그림자, 즉 소유의 집착에 사로잡힌 엄마의 모습이라고 한다. 하늘을 나는 새는 자연과 생명력을 상징하고 동화 <개구리 왕자>는 상식을 넘는 상식으로 남녀 관계를 비의를 단면적으로 그린 일명 밀당 스토리라고 하니, 원작의 재미를 뛰어넘는 저자의 흥미진진한 해석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출 수 없다. 555페이지에 달하는 『옛이야기의 힘』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릴 적 동화책 꽤 읽었던 나조차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고, 굉장히 유사한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든, 처음 만났던 이야기든, 이 책을 읽고 난 전후의 상황은 판이하다. 심리 분석가는 아니지만, 동화를 통해 각 인물이 지닌 트라우마를 알아채고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드러낸 욕망에 눈 뜬다. 최고의 결말이라 여겼던 권선징악의 구조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음을 깨닫고 그저 멋지고 예뻐 보이기만 했던 주인공들이 내면에 감춰둔 사연에 귀 기울이며 이야기의 본질에 성큼 다가서는 기분. 단언컨대, 내 기준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재밌는 옛이야기 책은 없었다. 이토록 재밌고 사려 깊으며 똑소리 나는 해설이라니! 제목처럼 '옛이야기의 힘'을 실감하며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던 즐거운 시간. 사심 가득 담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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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피플 케이스릴러
김나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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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노운 피플

글쓴이: 김나영

펴낸 곳: 고즈넉이엔티




특별한 한국 미스터리 문학을 선도하는 고즈넉이엔티 출판사의 '케이스릴러' 신간, 『언노운 피플』을 만났다. 김나영 작가와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2019년에 읽었던 전작 『붉은 열대어』는 워낙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여전히 기억할 정도. 시작하자마자 무섭게 빨아들이던 흡인력에 놀라고,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연상될 만큼 잔혹했던 소설 후반부에 손이 부들부들, 심장이 쿵쾅쿵쾅 널을 뛰었던 터라 이번 작품은 기대에 앞서 두려움이 컸다. '제발, 조금만 덜 잔인하기를...' 염불이라도 외듯 마음속으로 중얼중얼 방어 태세를 갖추며 몇 장을 넘기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이야기 속으로 쓱 빠져들었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후, 어린 딸 수아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은수. 처음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보고자 오른 먼 길이었지만, 점점 심해지는 몽유병 증세로 3년 만에 귀국을 결심한다. 부모님을 놀라게 할 생각으로 연락 없이 돌아온 은수는 먼지가 소복이 쌓인 집으로 돌아와 짐을 푸는데... 3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었던 걸까?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린 불안감은 누군가 은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음이 드러나는 순간 극에 달한다. 아무리 연락해도 답이 없는 은수의 엄마. 두려움에 휩싸여 쫓기듯 부모님 집으로 간 은수는 그곳에서 수아를 잃어버리고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수아를 데려간 사람은 누구일까? 작년 크리스마스에 미국에 있었던 은수를 명동에서 만났다는 친구, 이상한 말을 하는 수아, 귀신을 봤다고 외치는 옆집 노파, 퀵 배달원 사이에 뿌려진 은수의 사진,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불구가 됐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 끊임없이 주변을 맴도는 은수와 꼭 닮은 누군가... 이 모든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베일에 싸인 진실을 향해 박차를 가한다.










다행히 전작 『붉은 열대어』 보다 덜 잔인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번 작품 『언노운 피플』도 만만치 않게 잔혹하고 서늘하다. 사람의 목숨을 벌레 죽이듯 가볍게 생각하는 악녀, 배 아파 낳은 친자식에게 가하는 말도 못 할 학대, 불이라는 소재로 깁고 덧댄 너덜너덜한 복수. 누군가 당신의 삶을 노리고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표적이 됐다면? 이 소름 끼치는 상황에 내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욱신거리는 패닉 상태. 수수께끼 같은 복선들이 퍼즐을 맞추듯 하나씩 실체를 드러낼 때,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결말을 예상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인생 깊숙이 파고들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만한 소재로 성큼 다가왔던 이야기.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도 들었지만, 살면서 절대 이런 일만은 없기를 간절히 바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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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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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정한 유전

글쓴이: 강화길

펴낸 곳: 아르테




'지난 몇 년간, 하나의 세계관을 생각하며 짧은 소설들을 썼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에 걸쳐 긴 이야기를 연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의 배경과 구성은 완벽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느슨한 연결을 원했다.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과 그들의 마음이 아주 조금씩만 겹쳐지기를 바랐다.' - p148, 《다정한 유전》 작가 노트 중에서...




나는 한국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한국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아름답고 깊은 문장에 눈물 흘리며 전율하기도 하고, 언어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꼭 움켜쥘 수 있음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우리나라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어 모의고사 지문 해석하듯 요리조리 뜯어봐도 알쏭달쏭한 문장에 욱하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책,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은 뭐랄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제는 지도에서 찾을 수도 없는 해인 마을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대대로 소작농으로 살아온 가난한 이들이 모인 산골 마을. 세대를 거듭하며 소작농의 굴레에서 벗어나 공무원, 교사, 은행원 등을 배출하며 상황은 조금 나아졌지만 마을을 박차고 떠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해, 단 한 명이 마을을 떠났고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미리 알려두지만, '나'는 그해 3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첫 꼭지다. 두 번째 꼭지부터는 알듯 말듯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중간중간 산골 소녀들의 이야기가 섞여든다. 정신 차리고 다시 정리해보자. 서울 백일장에서 입상하여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은 진영과 민영. 그 두 아이를 둘러싼 다른 소녀들도 각자 글을 쓰며 누가 제일 나은지 가리기로 한다. 소녀들이 각자 글을 쓰고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접점을 찾기란 어렵다. 소설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나'조차 내가 알던 그 존재가 아님에 탄식하게 되는 복잡한 소설. 책 끝자락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나는 그녀의 의도를 조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상처받은 여자들의 삶을 다루고 싶었던 걸까? 답답한 해인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녀들, 남자 친구에게 거침없이 맞는 지우, 전문의 시험을 포기하고 육아에 매진해야 했던 누군가의 엄마, 왕가의 핏줄이지만 삯바느질로 외로운 생을 살아야 했던 황녀. 하지만 여인들이 겪은 '고통'에 초점을 맞추기엔 모호한 구석이 너무 많다. 병원 꼭대기 다락에서 방마다 들렸던 고통스러운 비명은... 세상을 등졌지만, 아직 세상을 잊지 못한 인물들의 한 서린 신음이었을까? 풀지 못한 숙제처럼 답답함이 앞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길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기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작가의 말처럼 이 이야기에 마지막이란 없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어디선가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거다. 안개 자욱한 길을 조용히 구르는 운명의 빨간 실타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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