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옛이야기의 힘

지은이: 신동흔

펴낸 곳: 나무의철학




어린 시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래 동화를 참 재밌게 읽었다. 당시에는 나쁜 사람이 벌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 이야기 속에 내포된 숨은 뜻이나 폭력성의 강도를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흥미롭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동화의 초판 원작과 숨은 뜻, 그리고 그 잔인한 폭력성을 깨인 눈으로 마주하니 옛이야기라는 게 참 만만하게 볼 내용이 아니더라. 그때에 이어 또 한 번의 신선한 충격! 화자와 해설자에 따라 이야기가 굉장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음을 이번에 제대로 느꼈다. 우리나라 최고의 구비설화 전문가이자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신동흔 저자. 2019년 1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 출연하여 옛이야기의 숨은 가치를 알려 큰 화제를 모았던 저자가 방송에서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엮어 『옛이야기의 힘』이라는 책을 펴냈다. 신비로운 탐험이 펼쳐질 듯한 표지 디자인에서 이미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 코로나와의 오랜 사투에 지쳐 울적한 마음을 찬찬히 어루만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관계'를 탐구하며 치유하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야기와 인간>, <성장과 독립>, <호모 에로스>, <세상과의 대면>, <성공과 행복>. 이렇게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시작한 옛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다. 그 옛날 천일야화의 흉포한 왕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 여지없이 펴든 이 책은 인자한 할머니의 목소리로, 때론 무섭도록 냉철한 심판자의 목소리로, 때론 듣는 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저자가 어린 시절 들었던 가장 무서운 이야기로 꼽은 여우 누이는 내 기억에도 생생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들 셋이 있던 다복한 부잣집에 여우가 딸로 둔갑하여 태어난 후, 매일 가축의 간을 빼먹다가 나중엔 가족까지 잡아먹었다는 무서운 이야기. 어떤 이야기든 생존자는 있는 법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막내아들은 부모와 형들이 죽은 흉가를 살피러 갔다가 여우 누이를 맞닥뜨리고, 현명한 부인의 조언대로 뒤로 병을 차례차례 던지며 마침내 여우 누이를 처단한다. 누이가 범인이란 아들들의 말을 믿지 않고 딸을 감싸고 돌았던 부모. 그런 부모가 자식을 여우처럼 키우고 결국 그 자식에게 해를 입곤 한다. 옛이야기이지만, 현대적 상황과 찰떡같이 맞물려서 근래에 쓰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랍다. 당나귀 가죽을 쓰고 숨어 살던 공주나 까마귀 혹은 야수로 변했던 왕자의 모습은 '관계'로 인한 상처를 뜻한다고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에서 홀로 웅크려있던 순간이 있지 않은가? 상처 입고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를 옛이야기에서 그렇게 표현한 거라니, 알면 알수록 진하게 우린 사골국처럼 깊은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독일어로 '상추'를 뜻하는 라푼첼.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녀가 실은 라푼첼 엄마의 또 다른 모습이라니, 이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모성의 어두운 그림자, 즉 소유의 집착에 사로잡힌 엄마의 모습이라고 한다. 하늘을 나는 새는 자연과 생명력을 상징하고 동화 <개구리 왕자>는 상식을 넘는 상식으로 남녀 관계를 비의를 단면적으로 그린 일명 밀당 스토리라고 하니, 원작의 재미를 뛰어넘는 저자의 흥미진진한 해석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출 수 없다. 555페이지에 달하는 『옛이야기의 힘』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릴 적 동화책 꽤 읽었던 나조차 처음 듣는 이야기도 있고, 굉장히 유사한 스토리를 지닌 이야기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든, 처음 만났던 이야기든, 이 책을 읽고 난 전후의 상황은 판이하다. 심리 분석가는 아니지만, 동화를 통해 각 인물이 지닌 트라우마를 알아채고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드러낸 욕망에 눈 뜬다. 최고의 결말이라 여겼던 권선징악의 구조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음을 깨닫고 그저 멋지고 예뻐 보이기만 했던 주인공들이 내면에 감춰둔 사연에 귀 기울이며 이야기의 본질에 성큼 다가서는 기분. 단언컨대, 내 기준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재밌는 옛이야기 책은 없었다. 이토록 재밌고 사려 깊으며 똑소리 나는 해설이라니! 제목처럼 '옛이야기의 힘'을 실감하며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던 즐거운 시간. 사심 가득 담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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