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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제목: 다정한 유전
글쓴이: 강화길
펴낸 곳: 아르테
'지난 몇 년간, 하나의 세계관을 생각하며 짧은 소설들을 썼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에 걸쳐 긴 이야기를 연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의 배경과 구성은 완벽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느슨한 연결을 원했다.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과 그들의 마음이 아주 조금씩만 겹쳐지기를 바랐다.' - p148, 《다정한 유전》 작가 노트 중에서...
나는 한국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한국 작가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아름답고 깊은 문장에 눈물 흘리며 전율하기도 하고, 언어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꼭 움켜쥘 수 있음에 감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우리나라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어 모의고사 지문 해석하듯 요리조리 뜯어봐도 알쏭달쏭한 문장에 욱하기도 한다. 이번에 읽은 책, 강화길 작가의 『다정한 유전』은 뭐랄까.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제는 지도에서 찾을 수도 없는 해인 마을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대대로 소작농으로 살아온 가난한 이들이 모인 산골 마을. 세대를 거듭하며 소작농의 굴레에서 벗어나 공무원, 교사, 은행원 등을 배출하며 상황은 조금 나아졌지만 마을을 박차고 떠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해, 단 한 명이 마을을 떠났고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미리 알려두지만, '나'는 그해 3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첫 꼭지다. 두 번째 꼭지부터는 알듯 말듯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중간중간 산골 소녀들의 이야기가 섞여든다. 정신 차리고 다시 정리해보자. 서울 백일장에서 입상하여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은 진영과 민영. 그 두 아이를 둘러싼 다른 소녀들도 각자 글을 쓰며 누가 제일 나은지 가리기로 한다. 소녀들이 각자 글을 쓰고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접점을 찾기란 어렵다. 소설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나'조차 내가 알던 그 존재가 아님에 탄식하게 되는 복잡한 소설. 책 끝자락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고서야 나는 그녀의 의도를 조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상처받은 여자들의 삶을 다루고 싶었던 걸까? 답답한 해인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녀들, 남자 친구에게 거침없이 맞는 지우, 전문의 시험을 포기하고 육아에 매진해야 했던 누군가의 엄마, 왕가의 핏줄이지만 삯바느질로 외로운 생을 살아야 했던 황녀. 하지만 여인들이 겪은 '고통'에 초점을 맞추기엔 모호한 구석이 너무 많다. 병원 꼭대기 다락에서 방마다 들렸던 고통스러운 비명은... 세상을 등졌지만, 아직 세상을 잊지 못한 인물들의 한 서린 신음이었을까? 풀지 못한 숙제처럼 답답함이 앞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자욱한 길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기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작가의 말처럼 이 이야기에 마지막이란 없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어디선가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거다. 안개 자욱한 길을 조용히 구르는 운명의 빨간 실타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