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맞지 않는 아르테 미스터리 18
구로사와 이즈미 지음, 현숙형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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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에 맞지 않는

글쓴이: 구로사와 이즈미

옮긴이: 현숙형

펴낸 곳: 아르테

 

 

 

'사회에서 낙오된 실패자. 쓰레기. 밥만 축내는 식충이. 돈벌레. 루저... 썩을 놈'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요즘, 혀를 끌끌 차게 하는 인두겁을 쓴 괴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자들. 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 생각하는 부류는 또 있다. 사회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들. 사회는 그런 은둔형 외톨이나 니트족에서 낙오자의 딱지를 붙이고 위험한 혹은 불필요한 잉여 집단이라 단정 짓는다. 피가 섞인 부모조차 골칫거리로 여기는 그들을 과연 온전한 인간이라 인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의문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을 거다. 구로사와 이즈미의 『인간에 맞지 않는』은 마치 그런 낙오자를 처단이라도 하듯, 이형성 변이 증후군을 퍼트리며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현실을 연출해낸다.

 

 

 

 원인 불명 질환. 사회적으로 낙오한 후 스스로 방에 숨어버린 10대, 20대들이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벌레로 변하기 시작한다. 전염성과 전파 경로, 치료법 등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에서 국가는 서둘러 그들을 손절하는데... 벌레로 변이된 자는 가족의 사망 신고로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심할 경우 가족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한다. 50대 주부 미하루의 아들 유이치도 어느 날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버렸다. 흡사 지네 혹은 거미와 같이 여러 다리를 지닌 곤충으로 변해버린 아들. 하지만 미하루는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다. 눈엣가시였던 아들 유이치를 이참에 치워버리려는 남편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미하루는 힘겹게 아들을 지켜낸다. 누구도 응원해주지 않는 괴로운 상황 속에서 미하루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물방울회'에 참석해 마음을 다스리며 절대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유이치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이 내내 재밌지는 않았다. 유이치를 없애려는 아버지를 보며, 부정이란 저렇게 지독하게 냉정할 수 있는가 한탄했고... 바보 같을 정도로 꿋꿋하게 아들을 지켜내는 미하루의 모정을 과하다 여기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이 소설은 미하루가 벌레로 변한 아들을 지켜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울림은 마지막 장면에 포진해있다. 부모는 죄가 없다. 하지만 자식도 죄가 없다. 서로를 100% 이해할 순 없겠지만, 아무리 다른 방식이라도 서로에 관한 마음이 진심이라면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는 걸 확인했던 시간. 제대로 날린 '역지사지' 핵 펀치에 고소해하며 혀를 끌끌 차기도! 가장 좋았던 건 유이치와 미하루가 마침내 마음의 벽을 허물던 부분이다. 역자님이 순간의 감정을 오롯이 표현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는 그 찰나의 장면.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 울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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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1
박서련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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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호르몬이 그랬어

《트리플 시리즈》

글쓴이: 박서련

펴낸 곳: 자음과모음

 

 

 다양한 장르에서 참신한 시도로 풍성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이번에 또 흥미로운 기획을 펼쳤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다는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은모든, 배기정, 임국영, 한정현 작가라는 빵빵한 라인업이 형성된 가운데, 박서련 작가가 가장 먼저 이 시리즈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등 제법 굵직한 작품은 선보인 그녀이기에 과연 짧은 단편 모음집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지 정말 궁금했다. 장편과 단편을 모두 잘 쓰기란 상당히 어려운 법.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100m 달리기를 10번쯤 내리 달리는 속도로, 탄탄한 기승전결은 물론 독자의 가슴에 무언가 남겨야 한다면... 우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거뜬히 해낸 박서련 작가! 역시는 역시다.

 

 

 

 애인 1과 2 사이에서 야릇한 연애를 즐기던 주인공이 대학 시절 뜨거운 한 때를 보낸 동성 친구 '예'의 연락을 받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다시 바람은 그대 쪽으로>. 소설 속 소설이 사실인지, 아니면 사실이 그대로 소설이 된 것인지 아리송하면서도 상당히 실감 나서 재밌게 읽었다. '넌 내게 모멸감을 줬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는 안타깝고 찌질한 백수 아가씨가 등장한다. 10살이나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엄마와, 되는 일 하나 없는 상황에서 오래 사귄 연인에게 차인 딸. 그 옛날 사랑했던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갔던 딸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객기 아닌 객기를 부린다. 딸의 잘못이 아닌 걸 어쩌겠어! 범인은 호르몬! <호르몬이 그랬어>. 세 번째 이야기의 제목 <총_塚>은 무덤을 뜻한다. 이 상황에서는 납골당이긴 하지만... 지독히도 가난했던 생활 속에 서로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던 연인이 한쪽의 죽음으로 모든 걸 잃게 된다. 납골당 관리비를 낼 수 없었던 남자는 한 줌 재로 도기에 담긴 옛 연인을 조심스레 가방에 담아 도망친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마다 켜켜이 서려 있던 연인과의 기억에 가슴이 미어지다가, 황당하면서도 안타까운 결말에 탄식하고 말았다. 마지막 이야기, 에세이 <... 라고 썼다>에서는 글과 관련된 박서련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대략 10여 년 전에 쓴 이 책에 담긴 소설 3편을 참 미워했으며 어떤 심정으로 고쳤는지 털어놓는 고해성사 같은 글로 마침표를 찍는다.

 

 

 


 

 

조금 모호해도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고

감히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다.

지금은 정확한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누구에게나 공감의 여지가 있는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호르몬이 그랬어》, '...라고 썼다' 중에서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 재밌었다'. '재미'라는 원초적인 단어로 감상평을 표하기엔 박서련 작가에게 좀 실례일 것 같지만 정말 재밌었다. 힘차게 꿈틀거리는 활어처럼,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느낌. 그 파도를 따라 주인공의 속이 울렁거릴 땐 같이 속이 쓰리고, 주인공이 너무 슬퍼 눈물조차 흘리지 못할 땐 대신 눈물을 글썽였다. 단편 소설을 읽을 때면, 이 작품을 장편으로 늘이거나 드라마로 제작하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하는데 박서련 작가의 글은 좀 달랐다. 10여 년 전에 쓴 소설을 복잡한 심경으로 고치고 또 고쳤다고 했지만, 내가 만난 그녀의 소설들은 마치 처음부터 그 모습 그대로 태어났고 오히려 어딘가 손대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어쩌면 별것 아닌 듯 희미해졌을 이야기들이 활자로 찍혀 내 가슴에 또렷이 남았던 시간. 모호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었고 감히 아무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짓고 싶었지만, 이젠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를 찾는다는 박서련 작가. 그게 그녀의 소망이라면, 그녀는 이미 꿈을 이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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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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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부터의 내일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글쓴이: 하라 료

옮긴이: 문승준

펴낸 곳: 비채

일본 소설을 선택할 때,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시는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주기적으로 탐독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매일 똑같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법!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새롭고 짜릿한 작품을 찾아 헤맬 때, 어두운 망망대해에서 한 줄기 등불처럼 우리를 이끌어줄 좌표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오키상! 그 상을 거머쥔 작품이나 그 시리즈 혹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면, 약간의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늘 중간 이상의 수작이라고 믿고 읽어도 좋다. 추리 소설이 상당히 읽고 싶었던 어느 오후, 바람처럼 나타난 탐정 사와자키. 『내가 죽인 소녀』 란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받은 이 유명한 시리즈를 최신간인 『지금부터의 내일』로 만나게 되었다. 50대에 접어든 외로운 탐정 사와자키가 이번엔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 간판을 보고 들어온 의뢰인에게 자신을 사와자키라 소개하는 주인공은 늘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동업자였던 와타나베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무덤은 나오지만, 정말 죽은 것인지는 모호한...), 사와자키는 사무소의 이름을 바꾸지 않은 채 계속 탐정 영업을 이어가는 중. 유명한 저축은행의 지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의뢰인 모치즈키 고이치는 대출 예정 고객인 아카사카 요정 여주인의 사생활 조사를 부탁한다. 의뢰 비용은 30만 엔. 사와자키는 즉시 조사에 착수하지만, 여주인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황한다. 설상가상으로 의뢰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 사와자키는 할 수 없이 의뢰인의 근무처인 은행으로 찾아가는데, 어라? 2인조 무장 강도가 총을 들고 은행을 털러 나타난다. 생사를 오가는 긴급한 상황에서 은행 직원과 한 잘생긴 청년의 현명한 대처로 위기를 무사히 모면한 사와자키. 하지만 경찰이 확인차 열어본 금고에서 은행이 보유할 수 없는 액수의 큰돈이 발견되고 모치즈키 지점장이 실종되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지점장의 자택 욕조에서 발견된 누군가의 시신. 사와자키 탐정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냐고 묻는 잘생긴 청년 가이즈의 폭탄 발언.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는 새로운 사건과 뜻밖의 인물 관계. 과연 사와자키는 의뢰인인 지점장을 무사히 찾아내고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423페이지의 장편 소설이지만, 44장으로 잘게 쪼개 빠르게 전개하는 이야기. 다음 장에서는 또 어떤 진실이 밝혀질지 궁금한 마음에 '조금만 더 읽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책을 오래도록 손에 붙잡고 있었다. 미칠 듯이 소름 돋는 반전은 없었지만, 잔잔한 반전과 치밀한 전개로 진실에 다가서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진진했던 소설. 등장인물이 많아 조금 헷갈릴 때면 책 앞에 실린 등장인물 설명 페이지가 도움이 되었다. 사와자키의 현재 근황을 알게 되니 지난 세월,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내가 죽인 소녀>, <안녕, 긴 잠이여>, <천사들의 탐정>,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앞서 출간된 5권의 책에 담겨 있을 사와자키의 과거로 차근차근 역주행을 시작할 것 같은 예감. 큰 지진을 겪은 후, 사와자키는 담배를 입에 물고 말한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살았구나! 사와자키의 건재함을 확인한 강렬했던 마지막 장면. 그건 다음에 또 만나자는 약속이겠지? 『지금부터의 내일』이라는 제목처럼 이어질 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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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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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되는 꿈

《핀 시리즈 소설선 033》

글쓴이: 최진영

펴낸 곳: 현대문학

 

 

누군가의 아픔을 글로 담아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한 감정에 휩싸여 써낸 글은 불편함과 약간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아무 감정 없이 전달만 해서는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그 어려운 일을 기막히게 해내는 작가, 최진영. 그녀는 신작 『내가 되는 꿈』에서 과거와 현재의 '나'를 오가며 끊이지 않는 성장통과 가슴에 난 생채기를 조심스레 드러낸다. 그녀가 그려낸 소설 속 세상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주인공은 '남'이 아닌 '나'로 다가온다. 그래서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듯 가슴이 따끔따끔. 이 고통을 오롯이 즐기며 감내하고 나서야, 우리는 최진영이란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비로소 치유할 수 있다.

 

 

 

편지는 이상하다.

봉투를 열고 편지지를 펼치면 내가 전혀 몰랐던 마음이 펼쳐진다.

말은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져도 글자는 남는다.

비밀스러운 마음이 선명하게 남아 버린다.

내게 그걸 주면 나는 가진다.

편지를 쓸 때의 그 마음을 나는 확실히 가진다.

《내가 되는 꿈》 p86 중에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게 언제였던가... 좋아하는 마음과 설렘을 담아 '-에게'라는 첫 줄을 썼던 순간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은 나. 당장 집어치우고 싶은 회사 생활과 믿었던 남친의 배신으로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태희는 처리해야 할 모든 일을 할머니 장례식 후로 미루고 현실에서 도피한다. '그리고 정말 장례식이 끝났을 때 나는 꺾이는 중이었고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 p14'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태희는 우연히 들어간 커피숍에서 1년 후의 자신에게 도착할 편지를 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편지는 엉뚱하게도 같은 이름의 태희라는 중학생에게 도착한다. 중학생 태희 역시 지독한 성장통을 치르는 중이다. 괴팍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학대하고 입술에 뽀뽀하라는 성추행을 서슴지 않던 6학년 담임에게 복수하는 의미로 차에 똥을 싼 태희. 태희는 그 비밀을 간직한 채, 별거 중인 엄마와 아빠를 떠나 외할머니댁에 살게 된다. 부모님 없이 겪는 사춘기는 더더욱 순탄할 리가 없다. 남자 친구가 헤어진 이모가 중학생 태희에게 감정을 쏟아냈던 날, 태희는 정말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사춘기 소녀가 겪는 질풍노도의 감정을 털어내고 싶었던 태희는 30대 태희에게 보내는 편지에 감정을 토해낸다.

 

 

 

 30대 태희와 중학생 태희. 분명, 한사람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소설 중반에 이르러 30대 태희의 편지가 중학생 태희에게 도착하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뭐야? 다른 사람이었어? 그렇게 오해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애써 분리했지만, 그런 수고가 무색하게 소설의 후반부에 두 사람이 실은 같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최진영 작가는 말한다. '나는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이 삶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그 말에 4살, 13살, 16살, 20살의 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분명 나라는 존재지만,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또 다른 나인 것 같은 느낌. 30대 태희는 중학생 태희에게 몇 가지 당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일들. 오늘이 지나면 어제라는 과거로 사라질 이 순간들에 지난날의 내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괴롭고 힘들었던 일이 지나가도 또 다른 괴로움이 닥치겠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의 허들에서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닿은 편지로 과거의 자신과 만난 태희는 현실의 삶이 버겁긴 해도, 그 짐을 좀 덜어낸 듯하다.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는 성장통은 언제나 낯설고 반갑지 않지만, 이젠 각자의 고민을 앓았을 매 순간의 나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어넘겨 보려 한다. 이 책엔 훔치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다. 담고 싶은 문장에 인덱스를 붙이다 보니, 내 마음에 반창고를 꾹꾹 붙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최진영 작가가 빚은 우주에서 지난날의 나를 만난 후, 나는 아주 조금 어른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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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줄 의미 찾기의 기술
프랑크 마르텔라 지음, 황성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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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지은이: 프랑크 마르텔라

옮긴이: 성원

펴낸 곳: 어크로스

 

 

 코로나가 무자비하게 할퀴고 간 일상 속에서, 오롯이 이전의 나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요즘이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모두 약간의 우울감과 짜증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고 긴 싸움의 마침표를 찍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게 자신을 잘 다독여야 한다. 주기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힐링하는 게 관건! 오늘은 어크로스 출판사의 신간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으로 핑크빛 힐링 에너지를 충전했다. 물끄러미 책을 바라보며 제목을 조심스레 곱씹어본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뜻대로 풀리지 않는 우리의 인생을 무의미한 날이라 표현한 걸까? 이 책의 저자 프랑크 마르텔라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반짝임을 끌어 올리고, 설령 정말 무의미한 삶이었다고 해도 유의미한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따스한 조언을 건넨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해방감 대신 공허함에 시달린다. 앞선 세대보다 열심히, 더 똑똑하게, 더 효율적으로 일하지만 대체 왜 그렇게 밀어붙이는지는 설명 불가. 우리는 '바쁜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렸다. 이 대목에서 얼마나 뜨끔했는지...! 스스로 바쁜 함정에 빠져버린 장본인이 바로 나였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시간을 들여 심사숙고하고 수면 아래 잠자고 있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심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내 삶을 제대로 돌아보기 시작한다고... 얼마 전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나를 괴롭혔던 '부조리함'을 이 책에서 다시 마주했다. '우주가 당신이 거기서 찾고자 하는 유의미함을 내주지 않는 상황'. 부조리한 상황에서 인간은 인생이 하찮고, 영원하지 않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가치와 목표가 자의적이라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마음껏 동원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 더 의미 있는 삶을 빚어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행복은 충분히 좋은 경험이지만, 그것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의 풍요로움에 대한 모독이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p46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 어느 순간 행복이 인생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행복이란 그저 감정일 뿐인 것을... 행복을 절대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지 말고, 시야를 넓히자. 과거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유의미함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 '성찰 ⇒ 희망 ⇒ 계획 ⇒ 노력 ⇒ 의미'로! 인생의 의미 그 자체는 다름 아닌 자유, 바로 자율적인 힘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덧없는 인생,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이 하나의 인생이 내가 가진 전부란 점을 떠올리며 제한된 하루하루를 음미하자. 철학과 에세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 책을 읽으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오고 있었나. 나는 발전하였나. 아니, 사실 발전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내 삶이 지닌 의미에 집중하고 찰나의 행복에 감사하며 몸과 마음 모두 더 건강한 나로 거듭나고 싶었다. 이제야, 내가 인생에서 찾고 싶어 했던 것들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보다는 자신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내는 것. 찬란하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내 모습을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가벼운 전율과 함께 뭉클하게 다가왔던 따스한 조언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다. 토닥토닥...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은 상처받았던 예전의 나를 참으로 오래도록 토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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