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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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되는 꿈

《핀 시리즈 소설선 033》

글쓴이: 최진영

펴낸 곳: 현대문학

 

 

누군가의 아픔을 글로 담아낸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한 감정에 휩싸여 써낸 글은 불편함과 약간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아무 감정 없이 전달만 해서는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그 어려운 일을 기막히게 해내는 작가, 최진영. 그녀는 신작 『내가 되는 꿈』에서 과거와 현재의 '나'를 오가며 끊이지 않는 성장통과 가슴에 난 생채기를 조심스레 드러낸다. 그녀가 그려낸 소설 속 세상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주인공은 '남'이 아닌 '나'로 다가온다. 그래서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듯 가슴이 따끔따끔. 이 고통을 오롯이 즐기며 감내하고 나서야, 우리는 최진영이란 작가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비로소 치유할 수 있다.

 

 

 

편지는 이상하다.

봉투를 열고 편지지를 펼치면 내가 전혀 몰랐던 마음이 펼쳐진다.

말은 사라지고 기억은 희미해져도 글자는 남는다.

비밀스러운 마음이 선명하게 남아 버린다.

내게 그걸 주면 나는 가진다.

편지를 쓸 때의 그 마음을 나는 확실히 가진다.

《내가 되는 꿈》 p86 중에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던 게 언제였던가... 좋아하는 마음과 설렘을 담아 '-에게'라는 첫 줄을 썼던 순간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은 나. 당장 집어치우고 싶은 회사 생활과 믿었던 남친의 배신으로 지칠 대로 지친 주인공 태희는 처리해야 할 모든 일을 할머니 장례식 후로 미루고 현실에서 도피한다. '그리고 정말 장례식이 끝났을 때 나는 꺾이는 중이었고 부러지기 직전이었다. - p14'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태희는 우연히 들어간 커피숍에서 1년 후의 자신에게 도착할 편지를 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편지는 엉뚱하게도 같은 이름의 태희라는 중학생에게 도착한다. 중학생 태희 역시 지독한 성장통을 치르는 중이다. 괴팍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학대하고 입술에 뽀뽀하라는 성추행을 서슴지 않던 6학년 담임에게 복수하는 의미로 차에 똥을 싼 태희. 태희는 그 비밀을 간직한 채, 별거 중인 엄마와 아빠를 떠나 외할머니댁에 살게 된다. 부모님 없이 겪는 사춘기는 더더욱 순탄할 리가 없다. 남자 친구가 헤어진 이모가 중학생 태희에게 감정을 쏟아냈던 날, 태희는 정말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사춘기 소녀가 겪는 질풍노도의 감정을 털어내고 싶었던 태희는 30대 태희에게 보내는 편지에 감정을 토해낸다.

 

 

 

 30대 태희와 중학생 태희. 분명, 한사람이라 생각하고 읽다가, 소설 중반에 이르러 30대 태희의 편지가 중학생 태희에게 도착하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뭐야? 다른 사람이었어? 그렇게 오해하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애써 분리했지만, 그런 수고가 무색하게 소설의 후반부에 두 사람이 실은 같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최진영 작가는 말한다. '나는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이 삶을 혼자서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그 말에 4살, 13살, 16살, 20살의 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분명 나라는 존재지만,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또 다른 나인 것 같은 느낌. 30대 태희는 중학생 태희에게 몇 가지 당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일들. 오늘이 지나면 어제라는 과거로 사라질 이 순간들에 지난날의 내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괴롭고 힘들었던 일이 지나가도 또 다른 괴로움이 닥치겠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생의 허들에서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닿은 편지로 과거의 자신과 만난 태희는 현실의 삶이 버겁긴 해도, 그 짐을 좀 덜어낸 듯하다.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불쑥 찾아오는 성장통은 언제나 낯설고 반갑지 않지만, 이젠 각자의 고민을 앓았을 매 순간의 나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어넘겨 보려 한다. 이 책엔 훔치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다. 담고 싶은 문장에 인덱스를 붙이다 보니, 내 마음에 반창고를 꾹꾹 붙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최진영 작가가 빚은 우주에서 지난날의 나를 만난 후, 나는 아주 조금 어른이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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