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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날
호즈미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http://blog.naver.com/yyn0521/220399886234
《결혼식 전날》 : 잔잔하고 우울한데, 나쁘지는 않은
이토 준지 신간을 사려다 그것만 사기 아쉬워 만화 코너를 기웃기웃 하다 이것까지 같이 질렀다. 그림이 예뻐서 예전에 보고서 아른거렸던 책이었는데 결국. <이 만화가 대단하다!>라는 타이틀이 내가 지르는 데 한몫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우리나라의 작품 중 '어느 신인상'을 탔더라 하는 건 별로 감흥이 없는데 일본에서 '이 소설이 대단하다'라거나 '어디 수상작'이라거나 하면 한 번은 더 보게 된다. 게다가 이 책이 애니북스에서 나온 거라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비닐을 뜯어내고 읽기 시작. 일단 이 책에는 여섯 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결혼식 전날', '아즈사 2호로 재회', '모노크롬 형제', '꿈꾸는 허수아비', 10월의 모형 정원', '그후' 이렇게. 읽기 전에는 소소한 행복을 다룬, 이를 테면 마스다 미리 같은 만화를 연상했었다. 그런데 '결혼식 전날'을 읽고 나선 내가 기대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일상의 유쾌함은 조금 떨어지는 약간 우울하고, 잔잔한 만화랄까. 단편을 읽고 표지를 다시 보니, 남자의 표정이 약간 시니컬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턴 스포가 될 텐데) '결혼식 전날'에선 부모님을 여의고 남동생과 살아왔던 누나의 결혼식 전날 풍경을 담았고, '아즈사 2호로 재회'에선 일년에 한 번 죽은 아빠와 재회하는 어린 딸의 하루를 그렸다. '모노크롬 형제'에선 학창시절 쌍둥이 형제가 같은 여자를 좋아했는데,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그 여자의 장례식장을 찾아간 뒤 벌어지는 형제의 이야기이며, '꿈꾸는 허수아비'는 친척집에 얹혀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남매가 진짜 어른이 되는 이야기이고, 10월의 모형 정원은 고독했던 소설가가 신비한 일을 겪고, 영감을 얻어 새로운 작품을 그려내는 희망적인 이야기다. '그후'는 어떤 남자와 함께 살게 된 고양이가 남자를 관찰하는 짧은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죽음이 만화 속에 깃들어있는 느낌이라 좀 그랬지만, 그걸로 인해 어그러지는 게 아니라 희망을 발견하거나, 꼬였던 일이 풀린다거나 하는 것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특히 전편, 후편으로 나뉘었던 '꿈꾸는 허수아비'는 긴 호흡만큼 약간 미스터리한 허수아비의 등장과 동생을 위험에서 보호해왔던 오빠가 서로의 홀로서기를 인정하고, 진짜 어른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든다. (오빠가 전형적인 츤데레 캐릭터) 전체적으로 그림체가 예뻐서인지 전부 볼만하다. 단편으로 따로따로 등장했던 주인공들이 한곳에 모인 뒤표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