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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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웬만한 독자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빨리 신간을 내놓는 소 같은 작가. 정말이지 다작의 아이콘. 한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얼른 그가 낸 소설을 다 읽어버리고, 그가 낸 작품들을 좇는 대신 신간을 기다리는 처지가 돼보겠다고. 하지만 그가 낸 책이 무려 80권이란다. 어느샌가부터 난 그를 이기지 못할 걸 깨달았다. 그의 소설을 쭉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잠깐 다른 작가의 책이 보이고, 그러다 보면 그가 또 신간을 내놓고.. 이런 순환의 반복이다.

 

<매스커레이드 호텔> 역시 2012년 최신작이라는 걸, 난 무려 4년 뒤에나 읽었다. (아직도 읽지 못한 게 너무 많다) 그의 작품이 워낙 많아 끌리는 제목의 작품부터 읽는 편인데, 얘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제목이었다. (끌리는 제목이라면, 이를 테면 <악의>, <내가 그를 죽였다>, <붉은 손가락>, <졸업> 같은?) 그러다, 서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책이 읽고 싶어 서성이다가 눈에 들어왔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패스, 훈훈한 내용의 이야기보다 말 그대로 '살인사건' 본격 추리를 읽고 싶은 거라 그런 주제의 책은 모조리 패스. 그러다 보니 남은 것들 중에서 끌리는 게 이거였다. 책값도 비싸졌는데, 내용마저 허무하면 어쩌나 싶어 고민하다가 <매스커레이드 이브> 편이 따로 나온 걸 보면 '재미가 있겠다' 싶어 구입했다.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번 사건은 '호텔'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각기 다른 곳에서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직장인, 주부, 교사가 살해당한다. 그들을 엮는 실마리는 사건 현장에 남겨진 수수께끼 같은 숫자 암호문. 경시청의 엘리트 형사인 닛타가 그 암호문을 해독하고, 다음 살인 장소가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살인을 막기 위해 닛타는 호텔리어로 잠입하는데 그 사이 시각장애인 행세하는 노인, 해코지하는 학원교사, 의문의 여성 등이 등장해 용의선상에 오른다. 한편, 연쇄살인으로 규정되던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때, 4번째 범인과 피해자는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동기라도, 그동안의 작품은 이해가 됐는데 이번엔 좀 어거지같아서 아쉬웠지만)

 

이 책에선 형사 닛타와 베테랑 호텔리어 나오미가 사사건건 부딪히다 의기투합하는데, 호텔 잠입의 비밀이 밝혀질 때 융통성 없는 나오미 때문에 혈압오를 뻔했다. 너무 올곧달까. 그게 그 캐릭터의 매력이지만, 반복적인 '호텔리어의 자세'는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반면, 닛타와 노세는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캐릭터를 좋아했던 나는, 또 하나의 호감 캐릭터의 발견이었던 셈. 이 책이 괜찮으면 <매스커레이드 이브>를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푹 빠져 읽었지만, 같은 호텔 배경이라면 '꼭 읽어야겠어!'는 사실 아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만.

 

이 책을 탈고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앞으로 똑같은 작업을 한다 해도 이보다 더 잘해낼 자신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시간 때마다 이런다. 그래도 잘 쓰니까 미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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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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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줘》 : 길리언 플린

사이코 여성의 한 획을 그은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는 대단했다. 영화의 흥행과 함께 소설도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에 자연스레 안착했다. 이때 '책을 찾아 읽을까'하다가 영화가 만족스러웠는데 소설이 과연 만족을 시켜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 어마어마한 두께에 눌려 '다른 책부터 읽자'라는 마음이 되었다. 이후 <나를 찾아줘> 대신 저자 길리언 플린의 <나는 언제나 옳다>를 읽었고, 그녀의 사실적이고 자극적인 문체에 현혹되어 <나를 찾아줘>를 읽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이 책은 분명 영화처럼 재밌지만, 영화만큼 혼란스럽다. 

영화에서 사이코 부인(에이미)에게 잘못을 한 남편 닉은 그녀에 의해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다. 살인의 피해자는 아내 에이미. 그녀는 모든 닉을 옭아맬 장치(피, 보험금 증액문서, 가짜임신서, 엉망이 된 집.. 등)들을 마련해두고, 떠나버린다. 그리고 여러 사건이 일어난 뒤, 에이미는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고, 남편은 에이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들의 위장된 행복한 결혼생활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에이미, 무슨 생각하고 있어?"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대단한 캐릭터의 탄생에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에이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닉에게 찝찝함을 느꼈다. 대체 왜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사는 걸까 하고 생각이 되는, 속시원하지 않은 결말이었다. '책을 읽으면 여자의 심리를 좀 더 잘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는데 과연 그런가 싶어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에이미의 시점과 닉의 시점으로 번갈아 보여준다. 영화랑 비교하면 상황이나 묘사에 있어서 좀 더 정교한 느낌이 든다. 때로는 너무 지나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의 각본을 길리언 플린이 직접 맡았다고 하더니 책의 내용을 그대로, 군더더기만 싹 제거한 채로 잘 살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랑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화에 간혹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 대사들, 일화들을 보면서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특히 영상이 아닌 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욕의 묘미랄까. 그런 게 더 거칠고, 편집증적으로 다가온다. (ex "망할년")

600p가 넘는 긴 글을, 오직 왜 닉은 사이코 에이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결말을 위해 읽는다면 다소 허무한 감이 들게 될지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또 다른 반전을 기다렸으나 그런 건 없었다.

결국 닉이 에이미를 받아들인 이유는 에이미의 협박도 있지만, 자신을 살아 있는 남자다운 남자로 만드는 건 에이미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다. 에이미는 사이코고,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여자지만,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닉은 그녀가 싫지만, 싫지 않다. 그리고 평범한 여자와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자신이 또 다시 별볼일 없는 그런 남편으로 머물지 모른다는 사실을 느낀다. 닉은 에이미를 화나게 하지 않으면서, 인정받는 멋진 남자로 살아가며 에이미와 또 다른 싸움을 하려 한다. 하지만 에이미는 역시 에이미다! 어메이징!


기억에 남는 구절

# 사악하고 사악한 여자.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정말이지 그녀가 싫다. 하지만 그년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 "그래, 고, 그렇게 생각해. 에이미는 늘 허튼 소리를 알아챌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 만약 네가 에이미한테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에이미는 그걸 사실로 받아들여. 똑똑하다고 말해주면 에이미는 그걸 아부 같은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난 에이미가 내가 잘못을 깨닫기만 한다면 당연히 자기를 다시 사랑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을 거라 생각하고 있어. 왜 안 그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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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을 생각한다
모리카와 아키라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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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을 생각한다》 : 모리카와 아키라

 

한국인에겐 카카오톡이 있고, 일본인에겐 라인이 있다. 카톡이 이미 장악한 시장은 라인이 분투를 해도 안 되고 있는데, 일본을 비롯한 몇 개의 나라는 이미 라인 천국이라니. 라인은 어떻게 성공한 걸까 라는 궁금증을 평소 갖고 있었다. 그러다 '라인 前 CEO가 밝히는 경영의 비밀'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박힌 다산북스의 <심플을 생각한다>의 신간 이벤트를 발견했다. 평소 라인을 향한 호기심과 함께  '심플'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대중성 있는 책들을 다양하게 발간하는 다간북스의 신간이니 참여해보고 싶었다. 결과는 당첨!  

이벤트 당첨일이 지나고 며칠이 되어서야 결과 발표가 났고, 또 며칠이 지나 책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작은 책. 그리고 심플이 뭔지 몸소 보여주듯 간결한 디자인. 띠지를 벗겨내면 제목, 지은이, 출판사명 뿐이다. 뒤표지는 아예 바코드밖에 없다. '진짜 심플하다'라는 생각이 들고, 책을 펼쳤더니 글자도 크고, 텍스트도 얼마 안 된다. 덕분에 금세 읽었다. (리뷰는 마감일에 간당간당하게 올리지만)


이 책은 라인을 경영하면서 그가 깨달은 경영철학을 엮었다. 그가 MBA에서 배웠던 지식은 버리고 현장에 맞춰서 몸소 익힌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래도 회사가 굴러간다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리고, 가끔은 냉정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그래서 합리적이지만. 이를 테면, 경력순이 아닌 철저한 능력제다.  경력순으로 하면 나태해지는 장기근속자가 생기고, 그런 사람들은 창의적이거나 의욕적인 신입들을 짓누르는 경우가 있다고 판단, 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 능력에 비해 많은 월급을 받던 사람들은 제 발로 회사를 나가게 됐고, 역량 있는 사람들만 회사에 남았다. 이후에도 이 시스템은 그대로다. 제 아무리 한 번의 성공을 이뤘어도 지속적인 성공이 아니라면 아웃이다. 또한, 그는 일본인 특유의 돌려말하기가 외국인과 같이 일하는 구조상 좋지 않다는 걸 알고, 면전에서 돌직구를 날리게 했다. 불필요한 소통을 줄이고, 확실하게 한다는 거다. 돌직구는 순간엔 부끄럽고, 화가 나도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쓰지 않고, 결국엔 가장 좋은 방법을 택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경계하는 것은 성공하는 것. 회사가 성공 궤도에 오르면, 직원들의 복지가 좋아지고, 가족들과 안정을 쌓아가고 그러다 보면 안주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행복해지면 발전이 없다고. 그래서 그는 성공을 했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한다. 이 글을 보면서 수많은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한 기업체를 경영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두산이 생각난다) 라인의 성공은 심플한 가치에 집중하고, 고객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살피고, 그 부분을 파고든 전략 때문이다. 결국 성공은 기본에 충실한 것.

 

 

* 이 책은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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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흥분 - 98일간의 기록 마이 리틀 트래블 스토리
유지혜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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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흥분》 : 유지혜

노란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시큰둥하게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여행에세이. 제목마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위트있는 '조용한 흥분'. 사실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책만으로 '감성적이다'라는 느낌을 물씬 주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언급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저자 유지혜가 인스타그램스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읽기 전엔  '글이 아니라, 인기가 많으면 책을 쓰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읽었다. 스물셋의 나이에 유럽을 2번 돌고 온 그녀의 여행기를. 깊이는 없고, 그 나이 또래에 내용만 있겠거니 했었는데, 읽다 보니 문체도 감성적이고, 좋아서 어느샌가 빠져들었다. 여행책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도, 여행 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조용한 흥분>은 괜찮았다. 한껏 치장된 유럽, 그리고 거기에 열렬히 환호하는 저자만 있지 않아서다. 적당한 희열과 낭만이 있고, 고통이 함께 있었다. 그것이 너무 가볍다거나, 또 너무 진지하지 않게 말이다. 처음 보는 독일인의 생일파티 초대를 받거나 디자인스쿨의 전시회를 감상하거나 하는 일들이 관광명소만 도드러지게 찍고 둘러보는 여행 같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짧게 치고빠지는 여행이 아니라 생활자처럼 늦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시장을 둘러보고, 이름나지 않은 카페를 둘러보고, 산책하는 여행을 즐기는 그녀를 보면서 유럽 로망이 다시금 새록새록 생겼다. 저자가 돈이 많아서 떠난 여행이 아니었으니까. 그 나이에 가족에게 짐이 되는 여행은 않겠다며 런던에서 돈을 벌기 위해 직접 판매할 아이템을 고르고, 파는 걸 보니 어린 나이에 더욱 대단하다 싶었다.

 

읽으면서 '그럼 왜 나는 떠나지 못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답은 용기가 없어서다. 직장을 박차고 나갈 용기도, 외국인 앞에서 영어를 잘 해낼 자신도 없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고 떠난 여행에서 내가 포기하고 온 것들에 비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적을까 봐. 그래서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거. 하지만, 가보고는 싶다. 아직까진 유럽에 대한 로망을 달랠 수 있을 정도지만, 한 몇 년쯤 뒤엔 참을 수 없을 만큼 쾅하고 터질 거 같다. 그땐 이 책을 떠올리면서 신나게 여행티켓을 질러 버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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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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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살을 위장하려는 여자의 괴기한 이야기를 그린 <나를 찾아줘>는 충격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반전의 향연. 하지만 그 속에서도 깔끔한 리듬을 가지고 전개되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를 재밌게 보고서 알게 된 사실. <나를 찾아줘>는 원작소설이 존재했으며, 원작은 100주는 가뿐히 넘기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원작을 가지고 작가 자신이 각본을 써나갔고, 그것도 모자라 할리우드에서 각본상을 휩쓸었다는 것. 이후 얼굴도 예쁘장하고, 능력까지 좋은 그녀에게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 모를 일이다.

영화를 보고 얼마 안 있어 서점에 들른 일이 있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이었는데, 눈앞에 <나를 찾아줘> 원작이 있기에 읽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단어들이 통통 튀는 것 같은 생생함이 날 것 그대로 살아 있었다. 대개 영화가 괜찮으면 소설에 손이 가지 않는데 이건 영화와 똑같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페이지에 과연 영화만큼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을까 싶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 책은 뒤로 밀렸다. 그런데 이번에 길리언 플린의 신간 단편이 나왔다. <나를 찾아줘>는 놓쳤지만, 이건 먼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이 괜찮으면 <나를 찾아줘>를 사야겠다 라는 결심으로 단숨에 샀다.

 

<나는 언제나 옳다>는 에드거상 최우수 상을 수상한 단편이라는 것으로 홍보를 하고 있었다. 페이지는 96쪽에 불과한데, 짧은 페이지에도 놀라운 스토리구성력을 보인다고 동료 작가(스티븐 킹..), 독자(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가 열변을 토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라는 호기심만 커졌다. 책을 사고 너무 궁금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몇 페이지를 읽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하층민의 삶을 사는 전과를 가진 한 여자가 있다. 매춘부의 일을 하다가 기력이 달려 점쟁이로 직업을 바꾼다. 예지력은 없지만, 거친 삶을 살았던 과거로 인해 사람들의 인상을 보고 재빨리 파악한다. 그런 그녀에게 심상치 않은 부유층 40대 여자가 접근한다. 의붓아들 때문에 괴롭다고 상담을 받다가, 급기야 그녀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의붓아들과 계모의 진술이 엇갈리고,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사건이 빵 터지고 결말을 맞이한다.  

 

페이지 1장만 읽었을 때, 아니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도 흡인력이 대단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는 중이었는데, 스티븐 킹이 말한 수사를 줄이고, 능동태를 쓸 것이며 등등의 기본기를 갖춘 게 그녀가 아닐까 싶었다. 한 문장, 한 페이지가 너무 아까울 정도다. 길리언 플린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판에 박힌 말이, 오롯이 와닿는다. (<나를 찾아줘>를 사야겠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짧은 서사에 길리언 플린은 4가지 플롯을 담아냈다고 한다. 분석하면서 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대단하다 정도만 알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열린 결말 스타일이라는 것. 그리고 96페이지를 가지고 한 권을 만들고, 그 가격을 9천원이나 때린 걸 '너무하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단편 소설 하나를 치자면 96페이지가 아닌, 82페이지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그 82페이지도 글자크기를 크게 잡고, 양쪽 정렬이 아닌 거라 보통 소설식 디자인을 따랐다면 더 페이지가 줄었을 거라는 것. 이건 작가가 아닌, 출판사쪽이 왜 이렇게 한 건지 의문이 든다. 굳이 양장을, 굳이 이 만한 두께를 만들어서 해야 했었나 하고.

그리고 적은 페이지의 염려 탓인지 다른 독자의 리뷰가 담긴 소책자를 줬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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