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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조선을 그리다 ㅣ 푸른도서관 31
박지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6월
평점 :
국사 시간에 '김홍도, 신윤복 등이 있었다.' 정도로만 언급되던 이 화가의 이름이 마치 이웃에 사는 누구인 것처럼 쉽게 불려지는 시대가 되었구나, 싶은 감회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들었다. 그가 풍속화만을 그린 줄 알았던 나에 비해 요즘 아이들은 도화서, 어진화상, 의궤 등의 어휘도 김홍도와 쉽사리 연결시킨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통해 김홍도는 또 다른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고, 그와 신윤복의 그림이 어떤 배경을 지니고 그려졌는지에 대한 상상하기가 대유행처럼 되었다. 이 책도 그런 '상상하기'의 한 사례이다. 거기에 김홍도의 일대기가 자연스럽게 덮여 있다. 또, 단순한 일대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김홍도의 내면이 잘 얹혀 있다. 이런 인물을 소위 위인전이 아니라 픽션화한 이야기로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런 이야기를 쓰려면 작가는 김홍도와 얼마나 자주 만났으며, 얼마나 자주 김홍도의 꿈으로 들어가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남사당패의 소년 들뫼와의 만남을 꾸며서 무동을 그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홍도를 서당 학동으로 들여보내 서당 풍경을 그린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야기마다 신분차별의 애환이 숨어 있다. 중인 신분의 김홍도가 겪었어야 할 애매함과 자괴감, 늘 회색지대에서 우물쭈물해야 했던 갈등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양반에서 천민으로 곤두박질친 들뫼가 당하는 서러움을 지켜보는 김홍도, 속량이 되었으면서도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거부당하는 차돌이과 그 아버지를 지켜보는 김홍도.
양반들은 그를 한낱 중인으로 보았고, 상민들은 그를 그저 중인으로 보았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림 그리는 일 뿐이었다. 영풍 현감으로 있었을 때 그의 자괴감은 더욱 깊어졌다. 어린 김홍도가 관찰자이기만 해도 됐었다면 현감 자리에까지 오른 중인 김홍도는 '뭔가 행동해야 하는' 강박이 컸을 것이다. 양반의 세상에서 중인이 현감 노릇을 하기가 어떠했을지는 불문가지. 파직과 의금부 압송과 뒤이은 사면은 그 자체로 김홍도의 신세를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림으로, 그림 속에서 그는 온갖 애환을 풀었다. 사람과 자연과 풍속을 담아내고 스스로와 남을 위무했다.
이 책은 몇몇 에피소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는 김홍도의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인간 김홍도를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해 보게, 그런 계기를 만들어 준다. 김홍도를 둘러싼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해서 그야말로 김홍도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느낌이 된다. 김홍도의 말년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휑해지는 느낌을 함께 받는다. 긴 구경 끝에 한 위대한 화가의 외롭고 고단한 마지막을 쳐다보고 서 있는 느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