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와 정글의 소리
프레데릭 르파주 지음, 이세진 옮김 / 끌레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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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는 매우 시니컬한 소년이다. 태국에서 프랑스로 입양된 미카는 자신을 떼놈이라 부르는 걸 질색한다. 그건 아시아인들을 싸잡아 중국인으로 여기며, 국가를 구별할 필요도 없다는 '무시'에서 비롯된 말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어릴 적에 서양인들을 모두 미국인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 속에는 잘 사는 나라 사람, 잘 생긴 사람이라는 비굴함을 깔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정반대이기도 하다. 아무튼, 미카는 자신이 프랑스인임을 의심받는 일에 지쳐가고 있었다. 더욱이 엄마의 죽음은 미카를 더욱 시니컬하게 만들었다. 그런 미카에게 난데없이 태국의 정글이 상속된다. 마침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는 물론 엄마를 잃은 샬리, 바르도 모두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태국의 정글 속 삶을 꿈꾼다. 

그러나 막상 정글에 도착해서도 미카의 생각은 자신의 근본에 대한 혐오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작 미카 자신은 이 고장의 벌레들은 이곳 출신을 자기네 편으로 생각하나 보다, 자신은 여기 있는 유일한 아시아인인, 물을 뿜는 고래처럼 땀을 흘리는 변호사 아저씨와 동류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니 혐오스러웠다.-24쪽-. 그러나 정글은, 정글에서의 삶은 미카를, 아니 상처를 지닌 미카의 가족 모두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어쩌면 낯선 곳(그곳이 내가 살고 있지 않은, 태어난 곳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의 부름은 우리 모두가 꿈꾸는 무엇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낯설지만 나 자신의 근본이 숨쉬고 있는 곳으로의 일탈. 그곳이 정글이라니, 무언가 운명적이라는 느낌이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정글에서 샬리는 코끼리 조련사로 거듭나면서 남성과 여성으로 한정지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 나가며, 바르는 동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수의사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아빠는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여성 수의사 사디타와의 관계 속에서 치유해 나가며, 미카는 자신의 내면에 깃든 힘과 운명을 느끼고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사물과 생명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능력을 타고난 아이. 심지어 미카는 죽은 자, 온전한 정신을 몸밖으로 내놓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이들의 영혼과도 교감한다. 그건 어쩌면 두 인종과, 국가와 대륙과 삶과 죽음,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도록 선택받은 이의 고통, 외로움일 수 있겠지만, 책의 마지막 즈음엔 미카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세상을 위해 남다른 고통을 느껴야 하는 미카가 좀 안타까웠다.  

"넌 이제 세상의 악다구니에서 이 모든 소리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네 몸으로 자연의 상처를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우리는 그걸 '자비'라고 부른단다. 자비는 모든 불교도들이 지향하는 것 중 하나지."-193쪽- 신비로운 인물인 코끼리 조련사 렉 할아버지가 미카에게 한 말이다. 타인과 자연의 상처를 느끼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상상만 해도 알 만한 일. 타인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이만이 '자비'를 베풀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일. 자비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고 현실적인 청소년 소설의 느낌으로 시작하다가, 갑자기 정글로 떠나는 모험이 뒤따르더니, 영혼의 교감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영역으로까지 독자들을 정신없이 이끄는 묘한 책이다. 그리고 아시아인인 우리들에게는 공감의 폭도 크다. 문제의 본질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끌어내고,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는 이 책의 정신이 쉽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평범하면서 비범한 소년(그리고 그 가족)의 성장기. 따지고 보면 모든 아이들은 평범하지만 비범하다. 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된 아이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고, 상처를 지니고 낯선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치유의 메시지 같기도 하다. 재미도 재미려니와 그보다는 곱씹을수록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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