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위버 -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
잭 보웬 지음, 박이문.하정임 옮김 / 다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대학 시절 생활철학이나 미학 개론을 신청해 낯선 강의실에 앉으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미노타우루스의 미로에 들어간 느낌. 어렵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고, 그보다는 어떤 비밀에 다가간다는 두려움 같은 것. 그런데도 나는 철학이라는 것에 매료됐다. 아니, 우주나 나 자신의 비밀에 근접한다는 두려움이 더 나를 끌어당겼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감탄했고, 그들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수천 년 전 그리스 도시를 걸어 다녔던 그들의 멘탈 파워는 내게 새로운 경이였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문학의 밑바닥에, 혹은 수학, 물리학, 화학이나 심지어 응용과학에까지 철학이 빗물처럼 스며들어 있다는 새삼스러운 발견. 그건 이 책을 통해서도 거듭 거듭 확인된다.

그런데 늘 어려웠다. ‘이데아론’이라며, 정의된 개념부터 들이대는 것에 지레 겁을 먹었다. 이후 읽은 철학책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니 중3이 되는 딸에게 권할 책이 뚜렷이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좀 색달랐다.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인데, 시종일관 철학을 이야기한다. 마치 소크라테스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다. 이안의 손을 잡고 슬슬 걷다 보면 철학의 맥이 시나브로 잡혀 온다.

실재하는 것과 우리가 지각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청소년들, 이 책의 도입에서 이안과 함께 고민해 보기 바란다. 진정하게 객관적인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잘 읽히면서도 슬슬 깊어지는 본문의 깊이에 더해 여백에서 짚어 주는 개념까지 찬찬히 읽거나, 본문 먼저 그리고 돌아와 개념 소개까지 읽거나. 아무튼 철학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충분히 되는 책이다. 548쪽에 이르는 양은 소설과 교양서의 중간을 걷는 것에서 비롯되는 가독성 때문에 차츰 부담스럽지 않게 되고, 두께에 비해 매우 가벼운 이 책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시점이 있으리라 장담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딸이 이안의 여자 친구가 되기를 한 순간에 바라게 되었다. 그 아이가 이 책으로 일찍 철학에 눈떠 다가올 삶의 구석구석에서 지혜가 반짝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철학은 케케묵은 무엇이거나, 논술을 위한 도구가 아니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삶의 지침, 지혜이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걸 내 딸이 이 책에서 발견하기를 바란다. 멀리 사는 조카의 얼굴까지 떠오르는데, 좀 비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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