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 생활 속 지리 여행
이경한 지음 / 푸른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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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범위에 대해 새삼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지리라는 것으로 묶일 수 있다는 것에 놀라서다. 이 책은 마치 지리가 아닌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에 대한 쉽고 부드러운 에세이. 아무리 제목에서 일상에서 만난다고 써 놓았지만 이렇게 하고도 '지리' 운운할 수 있겠나 싶어 사전에서 '지리'를 찾아 보았다. 지구 상의 기후, 생물, 자연, 도시, 교통, 주민, 산업 따위의 상태. 이렇게 씌어 있었다. 그랬구나. 정말 많은 것들이 지리에 포함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리학자의 눈으로 본 세상이다. 저자의 눈으로 보면 세상 모든 일에 지리가 들어 있다. 극장 좌석에서부터 납골당의 위치까지, 지리적 시각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참 당연한 듯하지만 새삼스럽고도 놀라운 일이다.  

그간 나는 일상에서의 지리라고 하면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지도검색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에 지리가 들어가는 지리정보시스템이니까. 그것의 편리성만 염두에 두었었다. 그런데 저자는 내비게이션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시각을 지녔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운전을 하다 보니 자기 주도적 운전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운전자는 머리 속에 도로 정보를 많이 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래 각인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장소의 지리적 현상이나 정보를 눈에 담을 기회도 줄어든다. 즉, 길눈이 어두워진다.(21쪽) 이 말은 일견 당연한 것 같지만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람들의 DNA 속에서 전승되고 계발되는 지리 정보 습득 능력의 저하는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인공적인 시스템이 정지되는 날엔. 더구나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들을 유심히 보는 습관마저 앗아가는 저런 도구들은 어쩌면 아름다움과 조화를 찾아내는 능력마저 떨어뜨려 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리 정도 습득의 수동성이 가져오는 비인간화.(물론 이런 생각은 독자의 오버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우리의 산하 분류 체계는 신경준의 '산경표'에 집대성되어 있는 백두대간, 호남정맥 등의 전통적인 표현과 일본 지리학자인 고토 분지로가 1930년에 [조선산악론]에서 주장한 분류체계로서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의 표현 두 종류라는 것이다.(71쪽) 읽으면서 얼른 전통적인 분류체계에 호감이 갔고, 산맥이라는 이름이 싫어졌다. 그런데 학자인 저자는 좀 달랐다. 각 각 분류체계의 장단점을 설명하면서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자고 다독인다. 마음이 급히 좁은 민족주의로 기울었던 귀 얇은 독자는 또 고개를 끄덕인다. 참 가벼운. 

지리학자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상당히 문학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군데군데 시적이거나 서정적인 표현이 꽤 많이 눈에 띈다. 폭포의 형성과정인 침식을 설명하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살아 있는 폭포는 계속해서 상류 방향으로 이동한다. 어느 책에서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라는 표현을 썼지만 강은 산을 넘을 수 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128쪽) 그리고 편향수와 방풍림을 설명하면서는 또 이렇게 썼다. 나무는 지역의 기후에 적응하면서 자란다. 그리고 그 지역의 기후를 자신의 몸에 문신처럼 각인해 둔다. 세월의 풍상을 자신만의 기억 코드에 저장해 두고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환경 적응의 전형을 보여준다.(156쪽) 이런 식의 문학적인 표현들은 그저 지리학자의 글이겠거니 재미를 기대하지 않고 읽다가 맛이 우러나는 느낌을 받는 대목들이다.

이 책, 물론 지리에 대한 상식과 지식이 풍부히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게 전혀 전문적이어서 어떻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정말로 에세이처럼 편안히 읽힌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리는 이 책의 구성에서 보이듯 입지, 환경, 사회와 문화, 지형 경관, 기후와 식생, 경제 활동에 두루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그것이 모두 우리의 일상과 연관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지리와 참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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