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철학소년 - 생각의 스위치를 켜라
김보일 지음, 구연산 그림, 고흥준 편집 / 북멘토(도서출판)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청소년을 위한 철학 에세이, 생각의 스위치를 켜라 등의 말이 표지에 적혀 있다. 딱 그 말대로 쓰이고 그려진 책이다. 청소년에게 보라 해놓고 턱없이 어렵고 머리 아프고 빽빽한 책들에 일침이라도 놓아주려는 듯 수준을 정확히 맞추었다. 글의 양도 알맞다. 하나의 꼭지가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짧고 명료하게 끝난다. 툭 던지듯 말 건네놓고, 생각 좀 해볼까 싶다가, 아, 머리 슬슬 아파지는데? 할 때쯤 확 끝나 버린다. 대부분의 꼭지가 세 쪽, 길어야 네 쪽이다. 게다가 그 속에는 그림도 들어 있으니까 읽기에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다. 쉬운 어휘와 간결한 문장도 부담을 확 앗아가 버렸다. 이렇게 쉽고 짧아도 할 말 다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할 말 다 한다. 아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던져서 철학 종합선물 세트 같은 느낌까지 든다. 중학생 정도에서 생각해 볼만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을 망라해 놓았다. 큰 테마는 , 생각을 생각하자, 다양한 생각, 다양한 세계,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자, 과학 그리고 우리 삶의 터전까지 5개로 잡고 각각에 열 몇 개 정도의 꼭지를 넣어놓았다. 굳이 세어 보니 합이 79개이다. 거기에는 '다르다와 틀리다는 어떻게 다를까?' 같은, 제목만 보면 하도 많이 들어 와서 식상할 것같은 이야기도 들어 있고, '일본인은 과연 경제적 동물일까?' 같은 의외의 제목도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성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는 이야기 같아서 읽어 보면 어딘가는 '좀 다른 점'이 낱낱의 꼭지마다에 숨어 있다. 슬쩍 훑어보고 '아는 이야기'로만 치부할 것은 아닌(이 책을 읽어 볼 성인에게 하는 말임)! 더구나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로울 수 있다. 특별히 다독, 다작, 다상량하는 아이를 제외하고서. 

와중에 나와 내 딸(중2)에게 충격적이었던 한 대목. '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라는 제하의 글이다.

지구상 모든 생물의 중량을 합치면 약 3조 톤인데 그 중 60퍼센트가 바로 미생물이다.(217쪽)

  우주는 약 130억 년 전에 탄생했으며, 지구는 약 46억 년 전에 만들어졌고 38억 년 전에야 비로소 생명체가 태어났다. 생명체가 오늘날처럼 진화하기까지 전 기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세월 동안 단세포 생물로 살았으며,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생물 종은 무려 3천억 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99.99퍼센트는 멸종했고, 지구의 역사 46억 년을 1년으로 놓고 계산을 해 본다면 인류가 태어난 것은 고작 12월 31일이라고 한다.
  이렇게 늦게 나타나고도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219쪽)
  
굵은 대목이 특히 충격적이었던 부분이다. 미생물의 저 대단한 무게라니! 게다가 갑자기, 우주의 탄생 이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고(카오스와 코스모스라는 말로밖에 가늠되지 않는데, 그게 결국 신화가 아니었던가, 하는 문제로), 90퍼센트 정도로 막연하게 알고 있던 멸종률이 99하고도 .99까지 간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고 기함했다. 인류, 언제든 소멸할 수 있는 종. 정말 별것 아니구나 싶은 통렬한 느낌이랄까.  

기말고사 기간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공부하는 딸에게 몇 꼭지를 읽어주며, 기말고사 끝나고 꼭 읽어보라 했다. 쉽고 재미있고 그러면서 가볍지 않다고. 아마 저자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어서, 아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림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칭찬. 호감 가는 스타일에 아이디어가 반짝 반짝 빛난다. 꼭지가 많아서 양도 만만찮고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구연산이란 이름은 그림작가로서만 쓰는 이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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