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역자 후기를 보니, '살갑고도 무거운 웃음'이란 말로 이 책을 표현해 놓았다. 살갑다는 말은 대개 부드럽고 상냥하다, 정이 들다 등의 뜻인데 사실 책을 읽고 나면 그리 동감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들, 매우 익숙하기는 하지만 살갑다기보다는 섬뜩한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거운 웃음이란 말에는 공감한다. 웃음이 나오는데 그야말로 무겁다. 풍자의 날이 매우 날카로워서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는 베일 것만 같은, 그래서 가벼이 웃어지지는 않는다. 

드물게 읽는 풍자 우화집. 사람 사는 모습과 그 허상을 이처럼 통렬하게 간단한 이야기 속에서 비틀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첫 번째 이야기 <까마귀가 뽑은 파디샤>에서부터 풍자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먼 옛날, 어느 나라에서는 까마귀가 그저 머리 위에 똥을 싸면 그 사람이 파디샤가 된단다. 그래서야 뽑히는 사람이나, 그렇게 뽑는 사람들이나,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까마귀 똥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정말 먼 옛날 어느 나라의 이야기일까?  <도둑고양이의 부활>에서는 일생을 도둑질로 살아가던 고양이 충반이 죽자 그 자리에 국세청이 들어서는데, 사람들은 그걸 충반의 부활로 본다. 국세청이 도둑고양이의 화신인 셈인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도둑질 자체는 오히려 자랑거리로 여기며 들키지만 않으면 칭찬해준다. 그러니 국세청이 그 짓거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남중국해 어느 마을의 이야기일까? 

이처럼 이 책은 권력자뿐 아니라 권력자를 떠받치는 우중까지도 비틀어 혼내준다. 비리가 횡행하면 무엇이 그 일을 가능케하는지 뿌리까지 파헤치며, 의심이 횡행하면 의심의 단초가 무엇이었는지 샅샅이 꺼내 보여주기 때문에, 누구도 풍자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은 무결점, 무오류의 존재인 것처럼 타인만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까지 아지즈 네신은 꿰뚫어보고서 깨우친다. '그러는 넌?'이라는 듯이. 

특히 <삐뚜름한 모델>에서는 마치 나를 향해 똑바로 손가락질하는 듯한 오싹함이 들었다. 개미와 물고기, 오리, 개와 온갖 동물들은 부모가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개미의 본성, 물고기와 오리, 개의 본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데, 사람은 부모를 그대로 따라했더니 엉망인 삶을 살았더라는 이야기. 정말 우리는 "나처럼만 살으라."고 자식에게 이야기할 자신 있는 삶을 사는 걸까? "나는 이렇게 살지만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이야기하거나, "너는 더 영악해져라, 무조건 이겨라. 남을 밟아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고 나면 아마 어른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쏟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제대로 읽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읽고서 어른들을 비판하고, 그 아이들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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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8 1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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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7: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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