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종합선물세트 메타포 10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황윤영 옮김 / 메타포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면 어린 시절 아버지 친구들이 간혹 사들고 오던 커다란 과자 통이 생각난다. 과자가 귀했던 그때, 그 큰 꾸러미는 우리에게 행복이었다. 세상이 이처럼 풍요로울 수 있구나, 하는. 그러나 언제부턴가 과자종합선물세트는 선물하는 이나, 선물 받는 이나 감동하지 않는 시시한 품목이 되어 버렸다. <사랑 종합선물세트>를 처음 받았을 때 묘한 기분이 되었던 건 그런 이유이다. 철지난 이야기처럼 빛바랜 무엇을 대하는 느낌, 그러면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세련되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들일 것 같고, 한때는 열광했으나 좀 시들해진, 그러나 때때로 갑자기 확 당기는 컨트리풍의 노래를 대하는 느낌. 그런 상반된 느낌이었다. 판권을 보니 원제는 <A couple of kooks and other stories about love>로 의미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시아 라일런트의 전작들을 읽지 않았으므로, 이 책으로 작가와 처음 만났다. 그리고 여덟 편의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의 감수성과 통찰력, 표현의 섬세함에 급 호감을 가지게 됐다. 여덟 편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데, 마음에 드는 건 결론 짓지 않음이다. 그들이 어떻게 될지,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독자가 상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고 있다. 콧수염이 거뭇하게 난, 여성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철물점 점원 돌로레스에게, 정신지체 장애인인 어니가 꽃다발을 가져다 주는 <당신에게 반했습니다>는 그야말로 '가져다 놓았다.'로 끝난다. 사랑이 시작되고,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에서 결론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로 읽힌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결혼하고 서로 아껴 주며 잘 살았습니다.'는 전래동화 풍이고, '그들의 사랑은 죽음으로 끝맺었습니다.'는 연극 풍이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저 어떤 사랑의 한 대목을 카메라로 따라가듯 보여주다가, 까무룩 저녁이 되어 촬영을 일단 마감한 듯한 느낌이다. 그게 좋다.  

순수한 어머니의 사랑이 가져오는 행복한 변화, 누구나 겪어 봤을 법한 어린 시절의 짝사랑, 손녀딸의 결혼식 날 감회에 젖어 지난 날을 회상하는 노신사, 축복 받지 못한 삶에 기적처럼 다가온 사랑, 노년에 찾아온 첫사랑처럼 설레는 완전한 사랑, 양다리를 걸친 한 소년의 다소 엉뚱하고 발칙한 사랑 철학, 키울 수 없는 아기를 가진 어리고 별난 연인의 아기에 대한 풋풋하고 예쁜 사랑-옮긴이의 말 중에서 

옮긴이가 설명하는 여덟 편 이야기를 훑어 보면 매우 평범한 사랑인 듯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 보면 참 색다르고, 매우 섬세하고, 전염되듯 독자도 가슴이 살며시 떨린다. 모든 사랑이 그렇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독특하고 별날까? 그리고 아름다울까? 옮긴이의 설명에 보면 원제에 들어 있는 '별난kook'이란 단어가 나온다. 제목의 별난 커플은 여덟 편의 주인공들 중 누구일까? 하지만 이들 모두가 별났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게 각인각색이어서 결코 똑같을 수 없고, 모든 사랑은 우주에서 유일하며 별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 가지 사랑이 다 별나서, 그래서 사랑은 아름답다. 별난 사랑. 사랑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해주는 잔잔하고 별난 책이다. 모든 별난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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