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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2
막심 고리키 지음, 이강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8월
평점 :
알다시피 막심 고리키는 필명이고 '비참한' '가슴 아픈'의 뜻을 지녔다. 그는 실제로 하도 살기가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가까스로 살아났다. 그의 글이 감동을 준다면 바로 이런 삶을 딛고 쓴 데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외침 중에는 입만으로 하는 것들이 있고, 자만심이 더 크게 자리하는 이들이 있고, 자신이 깨어 있다는 착각으로 하는 것들이 있는데, 고리키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는 공장부지 내에 있는 썩은 우물을 메우는 데 노동자들의 품삯을 깎아 비용을 대겠다고 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노동자들이 일어난다. 노동자들은 비참한 삶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며, 마침내 사회주의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든다. 사회주의가 실제로 사람들의 삶을 비참함에서 건져내 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비참함과 그 대물림을 좌시할 수 없음은 깨인 이들의 필사의 미션이었을 것이다.
주인공 펠라게야 닐로브나는 남편 미하일 브라소프에게 매일이다시피 얻어맞으며 살았던 여인이다. 결국 남편이 죽자 아들 파벨은 남편의 행동을 답습하다가 어느 날부터 변화하기 시작한다. 아들은 결국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인물이 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며, 그 일이 결정된 재판 다음 날 한낱 불쌍한 아낙네였던 닐로브나는 위대한 혁명가의 어머니로 장엄하게 일어선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닐로브나에게 깊이 동화되었다. 그녀가 끔찍한 생활에 길들여져 그저 남편 눈에 띄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것, 아들이 쌀쌀맞고 멀게 느껴질 때마다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던 것,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여기던 삶에서 아주 조금씩 껍질을 벗고 주체적인 삶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들어가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아서다. 진실로, 닐로브나는 그저 나와 다르지 않은 여인이었는데 소극성을 벗어던지고, 수동적인 삶에서 능동적인 삶으로, 이타적인 삶으로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켜 나갔다. 책에서 닐로브나는 작가에 의해 '그녀'라는 지시어 대신 꼬박 꼬박 '어머니'로 묘사된다. 어느새 독자는 닐로브나를 나의 '어머니'로 받아들인다. 배운 것 없고, 평생을 고단하게 살았으나 자식을 위해 용감하게 나설 줄 알며, 결국 모든 이의 어머니로 다시 태어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그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그녀가 '어머니'라는 것에 있었다. 가장 약한 존재이지만 가장 강하기도 한 어머니. 어머니가 실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에 대한 벅참이 밀려왔다. 나는 두 딸의 어머니이고, 내 어머니의 딸인데, 과연 내 삶은 어느 만큼 어머니다울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진정한 어머니다움이란 내 자식만 감싸고 도는 것이 아님은 분명한데 말이다. 이 책이 지닌 온갖 의미와 의의를 다 제치고 오늘 나는 그저 '어머니'라는 단어의 깊이를 새로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