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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여 꿈을 노래하라 2
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8년 5월
평점 :
남북전쟁이 끝나고 노예 해방이 선언되었지만 동학혁명 때 일부 양반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학무식한 놈들이 감히!" 식으로 생각하는 백인들이 대다수인 때의 이야기다. 백인 아버지와 유색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폴은 중간자가 흔히 당하는 수모와 괴로움을 겪는다. 본인에게나 타인의 눈에나 백인 쪽에 가깝게 생긴 폴의 정체성이 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상당히 공정한 백인 아버지 밑에서 백인처럼 자라다, 어느 날 자신이 결국 유색인임을 깨닫게 된 폴은 집을 뛰쳐나와 열차에 숨어든다. 그리고 청년 폴의 삶이 펼쳐진다. 폴은 한때 아버지 땅의 일부가 자신의 것일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며 땅을 갖고자 이를 악문다. 유색인과의 계약 따위를 쓰레기 취급하는 백인들과 거래하며 그가 땅을 확보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투쟁이다.
땅은 그런 것일 터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도 결국 타라로 돌아가기로 하며 끝을 맺지 않았던가. 돌아갈 곳, 태어나고 묻히는 곳, 곡식이 자라는 곳. 먼 대륙에서 끌려와 노예로 살았던 그들에게 땅이 얼마나 절실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훤한 일.
한편으로는 참 독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번도 가족에게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갔다. 가장 믿었던 형제 로버트에게 한번 배신당하자, 결코 마음을 열지 않았고, 아버지의 임종에야 아버지와 화해했다. 평범한 아줌마이자 엄마로서 책을 읽으며, 아끼던 자식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 아버지의 마음이 슬며시 전해졌다. 인종에 따른 차별이 핏줄보다 더 앞서는 것일 수 있구나 싶은. 혹은 그렇게나 아픈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미첼은 어릴 적 폴을 괴롭히다 결국 형제 이상의 우정으로 폴과 결속된 유색인이다. 그와 폴은 삶과 죽음을 함께 하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폴이 사랑한 캐롤린은 미첼과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지만, 미첼이 죽고 만다. 폴은 미첼의 아이를 임신한 캐롤린을 전과 다름없이 사랑하였으므로, 또한 미첼의 아내였기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겨, 결혼을 청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자 미첼이라 이름 붙인다. 어찌보면 형사취수 제도처럼도 보이지만, 멋있었다. 사랑하되, 온갖 것을 따지는 우리네의 편의주의식 사랑에 비해 순수하기 이를 데 없어 보였다. 얼마 전 <들판의 아이>라는 책을 통해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미망인을 책임져주는 형태의 결혼이 흔하다는 사실을 접했는데, 문명이 어쩌고 하는 것을 뛰어넘는 연대의식이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사랑은 그런 것이어야 할 거라는 느낌도 전해졌다.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고, 인종차별을 다루었지만 매우 순한 책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 싫은 사람에게도 좋겠다. 남북전쟁 직후 미국의 생활상도 슬며시 엿보이므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나 스칼렛 오하라가 살았던 때를 되새겨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친근하게 느껴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