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철학이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기고, 그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철학자로 묶어 버려 그들의 이름은 나열식으로만 거론되곤 했다. 적어도 내 학창시절에는 그랬다. 그리하여 탈레스 - 물, 피타고라스 - 수, 헤라클레이토스 - 불 , 데모크리토스 - 원자 식으로 외는 데서 그쳤다. 그나마 그럴싸한 생각은 원자를 생각해 낸 데모크리토스 정도라고 여겼고, 그뿐이었다. ‘하여간 옛날 사람들은 참 단순했다니까.’ 이렇게까지 오만하게 생각했다.

이 책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무식함과 오만함에 대한 깨우침의 책이다.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를 설득적으로 일러주는데, 너무 감동적이고 흥분되었다.

익숙한 이름도, 조금은 낯선 이름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지은이가 강조하듯이 가설을 증명할 만한 어떤 실험도구도, 기본 지식도 없던 수천 년 전에 그들은 경험과 사유를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해 심오한 질문을 던지고 그 해답을 궁구해 펼쳐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해답 하나 하나가 어쩌면 그렇게 동감을 주는지 한 마디로 놀라웠다.

읽을 때마다 ‘맞다! 그렇구나!’ 했다. 한 철학자의 사상에 공감하고, 다음 철학자의 반박 내지 새로운 해답에 공감하며, 울컥 울컥 솟아오르는 긍정의 기분에 휩싸였다. 사실 지금도 개개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서는 전혀 변별적인 지식을 얻지 못한 상태다. 책을 한 자도 빠짐없이 다 읽었음에도. 하기는 당연하다. 며칠 동안 책 한 번 읽어 어떻게 그들의 깊은 사상을 이해하랴. 지나가는 멋진 글들이 안타까워 형광펜으로 부지런히 밑줄을 그었지만 마치 바닷가 모래알처럼 그것들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다 빠져나가버렸다.

그러나 지식이 늘어나지는 않았으나 나는 변화했다. 이제 그들 모두를 대단히 위대한 인물로 여기게 되었다. 지나간 인류의 모든 사상가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좀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게 저자의 의도였다면 백퍼센트 성공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쓴 저자에 대해서도 존경의 감정이 생겼다. 또, 이 책을 번역한 이에 대해서도 대단하다는 심정이 되었다. 이 책이 읽기 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내용도, 양도 솔직히는 버겁다. 하지만 읽기가 무척이나 즐거웠던 것은 저자와 역자의 해박한 지식과 정확한 어휘, 문장의 구사 때문이었을 것이라 여긴다.

데모크리토스가, “용기는 행위의 시작을, 행운은 행위의 결과를 결정한다.”고 한 말을 이 책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었으랴 싶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이 엄격히 인과성에 의해 지배된다고 여겼고, 인간이 이성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지녔다는 것이 이 인과성을 해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는 우리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경우, 그 원인을 모를 때 우연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연의 움직이지 않는 인과성에 대해, 행위를 시작하는 것은 용기이며, 행운은 지성의 자유를 이용할 줄 알았던 인간이 인과성의 비밀과 맞닥뜨린 것이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문장이 또다시 그의 심오한 사상을 왜곡시켜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얕은 지식과 낮은 어휘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참, 대단한 분들. 저자는 이 위대한 철학자들이 알아낸 비밀이 지금의 과학계, 수학계 등에서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고, 그 예를 거듭 거듭 들어 준다. 다음은 그 한 예이다.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이렇게 묻는다. “대홍수가 일어나 모든 과학적 인식들이 파괴되고 오로지 하나의 문장만이 우리의 후대에게 전달될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착상이 가장 짧은 말 안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나는 그것이 원자가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들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 약간의 상상력고 사고력을 발휘한다면, 이 하나의 문장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세계에 대한 정보량은 실로 엄청나다.”-(459쪽)

공감, 공감. 이 책, 철학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필독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처럼 생판 문외한인 사람이 읽어도 아주 조금, 생각의 틀을 넓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철학의 깊은 즐거움을 슬쩍 열어 보여주는 책,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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