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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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집집마다 욕실이란 것이 없어서 양동이에 물 데워서 부엌 한 켠에서 머리를 감던 시절. 그렇게 머리를 감고 언 채로 연탄 뗀 방에 들어오면서 나는 늘 결심했었다. 아주 따뜻한 대중목욕탕 같은 목욕탕을 집안에 만들겠다고. 거기엔 사시사철 알맞은 온도의 물이 나오고, 볼일 보며 읽을 책이며 텔레비전이 놓여 있고, 심지어 힘들여 때를 밀지 않아도 저절로 온몸을 깨끗이 해 주는 목욕기계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나이 들어서는 꽉 막힌 도로에서 내 차만 휘익 공중으로 날아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꿈을 꾸곤 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유리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 어디든 데려다주는 꿈도 꾸었다.  

한두 번 그런 꿈을 꾸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이 책은 그런 꿈을 브레인스토밍이라는 형식으로 토론하고, 과학적 타당성을 검토하고, 글로 옮긴 일종의 실험이다. '꿈꾸는 과학'이라는 과학도 겸 글쟁이 그룹의 작업 결과물. 정재승이란 익숙한 이름이 뒤에 있다. 재미있는 발상이고, 익숙한 꿈들이고, 또 맹랑한 도전이다. 

사실 '주스비가 내린다면?' 같은 생각은 웬만한 아이들이 다 해보는 상상이다. 빵이 열리는 나무, 돈이 솟아나는 샘물 등등. 하지만 거기서 생각이 뻗어나가기는 쉽지 않다. 아이가 "주스비가 내리면 좋겠다." 할 때 주변에서 "그러면 어떨지 생각해 보자."고 덤비기가 쉽지 않고,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고 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젊은이들이 나선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처음 부분 '기발한 상상, 유쾌한 세계'의 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처럼 상상 많이 하는 사람들이 새롭게 느끼기에는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엉뚱한 상상, 기괴한 사람들' 부분의 '만약 입이 배꼽 옆으로 이사 간다면?' 등의 이야기는 좀 그로테스크해서 읽는 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나 제3부 '희한한 상상, 흥미로운 세계'와 '놀라운 상상, 재미있는 미래'는 그야말로 과학이 가미된 흥미진진한 상상으로 가득차 있어 읽는 재미 또한 빠르게 상승되었다. 

수학에서 '파이'의 크기가 달라진다거나 '등호' 즉 '='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의 세상을 가정해 보는 것은 지적 호기심의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묘미가 있었다. 

어쨌든, 책 전체가 참 기발하다. 한창 이런 상상의 와중에 있을 아이들에게는 친구를 만난 듯한 기쁨이기도 하겠다 싶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들은 '오랜 몽상이 현실이 되기까지'라는 표현을 썼는데, 잠깐 상상과 몽상의 사이를 생각해 보았다. 몽상은 상상보다 훨씬 더 현실에서 멀다. 몽상이라 표현한 것은 겸손하고자 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몽상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상상은 더 좋다. 많은 아이들이 몽상과 상상을 자유로이 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책이 그 동반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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