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떠들썩한 생태일기 봄 여름 가을 겨울 생태놀이터 4
곤도 구미코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11월 13일. 족제비로 보이는 동물이 죽었다. 새끼가 옆에서 울고 있다.

11월 14일. 홀로 남겨진 죽은 족제비 위로 비가 내리고, 파리 몇 마리가 나타났다.

11월 17일. 비 갰고, 여러 곤충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11월 25일. 더 많은 곤충들, 새와 쥐. 죽은 족제비는 꽤 해체된 상태.

12월  6일.  더 더 많은 곤충, 새, 쥐. 이들은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고, 족제비는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 있다.

1월 23일.   흰 눈 아래로 거의 뼈만 남은 족제비가 보이고 오소리인 듯한 동물이 족제비의

                 머리 부분을 입에 문다.

2월 26일.   덜 녹은 눈 사이로 드문드문 뼈와 털이 보이는 족제비. 곤충들이 다시 활동하려는

                채비를 하고 있다.

3월 8일.    아주 성기게 보이는 뼈와 털 사이사이에서 꽃과 풀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곤충의

                움직임이 좀더 활발해 보인다.

4월 3일.    꽃, 풀, 곤충들이 화려한 봄을 수놓고 있다. 족제비는 흔적이 없다.

5월 12일.  만개한 꽃과 풀 사이 사이로 수많은 곤충과 작은 동물들이 바쁜 움직임을 보인다.

5월 19일.  다 큰 족제비 한 마리가 쥐를 잡아물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풀숲은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다. 우거진 숲, 큰 나무 밑에서 기다리는 새끼 족제비에게로 어미가 

                먹이를 가져다준다.        

        

날짜를 제외하면 글자 한 자도 없는 책에 이런 구차한 설명을 붙여 보았다. 아이에게가 아니라 내가 내게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굳이 노장의 사상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나고 죽는 것, 누군가의 주검이 다른 생명에게는 자양분이 될 수 있으니 큰 자연의 틀에서 보면 슬플 일도, 특별히 즐거워할 일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살면서 그런 태도를 지니기가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슬프게도 보이고, 더러 끔찍하게도 보이는 이 책의 그림은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렇고, 동물의 주검을 해체해 가는 과정은 곤충이나 다른 짐승에게는 한바탕 파티나 마찬가지다. 사람을 제외한 동물들은 죽음에 대해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자연과 죽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느끼게 해줄 수 있을 매우 철학적인 그림책이다. 얼마 전 출간된 <쨍아>라는 동시화집에서도 잠자리 한 마리가 죽자 개미들이 낱낱이 해체해 가는 상황을 화사하고 몽환적인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그림은 생태를 표방하는 만큼 사뭇 사실적이다.

 꽃을 좋아하나 그 밑에 묻힌 동물의 주검에서는 쉽게 눈을 돌려버리는 사람의 자기본위적 시각을 은유적으로 꼬집으며, 아이들에게 태어남과 죽음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독특한 책. 곤도 구미코의 생태놀이터 네 번째로 나왔다. 묵직한 주제를 아이들을 대상으로 독특하게 다루는 이 작가의 다음 책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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