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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할머니
권정생 글, 강우근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8년 3월
평점 :
작자미상의 해학적인 민화(民畵)를 구수한 옛이야기를 곁들여 감상하는 느낌의 책. 권정생 선생이 다듬은 짧은 노래에 한바탕 재미있는 그림이 얹혀 그야말로 맛깔스러운 그림책이 되었다.
꼬부랑 할머니가 /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 꼬부랑 길로 가다가 / 꼬부랑 고래를 넘어 / 꼬부랑 나무에 올라가 / 꼬부랑 똥을 누니까 / 꼬부랑 개가 와서 / 꼬부랑 똥을 주워 먹었지. / 꼬부랑 할머니가 / 꼬부랑 지팡이로 / 꼬부랑 개를 때리니까 / 꼬부랑 깨갱 / 꼬부랑 깨갱 / 할머니 똥 먹고 천 년 살까 / 할머니 똥 먹고 만 년 살까 / 그러더래.
굳이 전문을 써보고 싶었던 것은, 아마 입 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권쟁생 선생 말마따나 “꼬부랑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들이 입과 입으로 전해 준 전설이며 고향”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책 뒷부분에 선생이 직접 쓰신 ‘꼬부랑 할머니 읽기에 앞서’라는 글이 선생의 필체 그대로 게재되어 있어, 읽다보면 잠깐 눈물이 난다. 기운 빼고 날려 쓰는 듯하지만 섬세하고 예쁜, 띄어쓰기가 정확한 선생의 글.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한 한 동화작가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서다.
꼬부랑 할머니는 그야말로 꼬부랑거리며, 살랑살랑 동네를 다니시고, 길에서 만나는 온갖 것들과 해찰하시고, 꼬부랑 길이며 꼬부랑 언덕이며, 꼬부랑 나무를 꼬부랑 올라간다. 세상 바쁠 것도 없고, 하릴없이 내달리다 누구와 부딪힐 일도 없고, 그저 얼굴에는 웃음이 한 가득이다. 천 년, 만 년 사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 인생이 이처럼 공평하지 아니한가, 하는 그런 표정.
아마 꼬부랑 할머니여서 그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발레리나처럼 등을 곧게 펴고, 목을 뻣뻣이해서야 어떻게 꼬부랑 길을 그처럼 유연하게 올라갈 수 있으랴. 꼬부랑한 세상을 꼬부랑 몸을 낮춰 살고, 먹은 대로 똥 누고, 내 똥 더럽다 하지 않고 먹어주는 꼬부랑 개에게 슬쩍 ‘예끼놈’하면서 살아가면 그뿐이다. 부릅뜬 두 눈으로 세상아 나와 싸우자, 하다가 뻣뻣한 몸으로 어디선가 죽어갈 수많은 이들에게 들려주는 꼬부랑 할머니의 구수한 인생철학.
꼬맹이들 보라고 그림책으로 나왔을 테지만 내게는 오만 가지 이야기로 읽힌다. 삶과 글이 일체였던 권정생 선생도 혼자 그립고, 그림도 마음에 쏙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