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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오르간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15
유모토 가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온통 봄 아지랑이 같은 이미지로 가득 찬 책이다. 모호하고, 햇살 눈부시며, 차분히 가라앉지 못하고 땅에서 몇 센티미터쯤 떠다니는 느낌. 뭔가 가슴 아프고, 불안하고, 뜻 모를 눈물이 시시때때로 나오고. 세상이 저만치 떨어져 존재하는 느낌. 바로 인생의 봄이었던 내 중학교 시절, 그 때의 이미지. 그때는 나도 간단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가족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시절, 일기장에 온갖 감정을 써놓았던 그 시절엔 세상이 참으로 낯설었다. 그랬다. 웬 꿈이 그토록 잦고 많았던지. 매일 잠 들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산산이 흩어져 이리저리 떠도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모든 느낌이 어제처럼 되살아왔다.
도모미에게, 이유야 많았을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 할아버지에 대한 이질감, 부모의 불화로 인한 가족 해체, 땅을 둘러싼 이웃집과의 다툼, 정신지체인 동생에 대한 부담감 등등...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그 아이는 삶의 한 단계를 넘어서는 데 따르는 아픔을 겪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제 속에 무슨 괴물이 들어 있다고 느껴, 과거의 나와 괴물을 품은 나, 남들 눈에 비치는 나 사이의 괴리를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춘기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하는 괴로움을 앓는 모든 청소년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도모미 뿐 아니라 도모미의 가족 모두는 삶의 한 단계를 넘어가기 위한 감기를 앓고 있었다. 도모미의 엄마를 예로 들면,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남편은 집을 떠났으며, 공부 잘 하던 큰아이는 중학교에 떨어지고, 둘째 아이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서 괴롭다. 어릴 적 좋은 마음으로 담을 세운 친정아버지의 행동 덕분에 이웃집에 땅을 빼앗긴 것도 억울하고, 그 아버지가 옛날 물건에 집착하는 것도 보기 싫다. 그런 식이다. 도모미의 엄마는 아마, 여름을 넘기고 있을지 모르겠다.
봄을 넘기기.
그러기 위해 이 책의 이야기는 자못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도모미의 삶은 심한 감기 끝에 미열만 남기고 기어이 일어서는 회복같은 화해로 마무리하며, 이어 긴 여름으로 향한다.
여름으로 향하기.
삶은 그런 것이다. 여름이 스러지는 날이 곧 오고, 조락으로 들어서고, 모든 잎을 떨구고 땅으로 떨어져 내리겠지만, 그 모든 것이 금방이겠지만, 그래도 봄은 길고 아프고, 들뜬다. 그러나 그조차 가을로 들어서는 내겐 부러움이다. 봄 속에 서서 봄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아 가슴앓이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축복의 박수를 보낸다. 너희들의 봄이 그래도 아름답단다, 하면서. 봄맞이를 하고 있는 우리 큰아이는 이 책에서 무엇을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