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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이토록 재미있을 수가.
첫 몇 장을 읽다가 책을 탁 덮었다. '이제 넌 꼼짝 마라.'다. 이 정도면 웬만한 책에는 눈도 까딱 않는 우리집 첫째놈도 반하지 않을 재주가 없으렷다. 이런 생각으로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워 책(가제본)을 닫아버린 것이다. 첫째가 하교하기를 기다려 첫 장을 읽어주었더니, 과연 난리가 났다. 읽는 나도 간만에 육두문자를 버젓이 써 가며 맛갈 나게 낭독을 했더니 속이 다 후련했다.
악, 재미있다!!
책 읽으며 이처럼 눈물나게 웃어 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싶은.
눈물난다는 말을 나는 두 가지 의미로 썼다. 재미있고 우스워서, 그리고 마음 짠해서.
사실 이 작품의 골격은 흔히 들어오고 봐왔던 스토리라인 위에 있다.
장애와 소외, 슬픈 사연을 지닌 다문화가정,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류의 의분에 찬 스타 선생님, 재수 없을 법한 전교 1등 소녀와 우수에 찬 소년의 가시밭길 사랑 등등.
그런데 왜 이 책이 이처럼 특별히 재미있는가 하면,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말맛과 슬쩍 숨기고 슬쩍 드러내는 기법에 있다. 다 알다시피 '슬픈 눈망울의 소녀가 살았어요.' 류의 이야기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 오히려 이처럼 웃기는 이야기 속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슬픔이 진짜로 슬프다. 그래서 더러, 눈물을 글썽거리며 책을 읽었다.
참, 재미있다.
딱 한 대목만 소개한다. 완득이 아버지가 카바레에서 일자리를 잃고, 5일장마다 중국산 손톱깎기 세트 등을 팔러다니기 위해 산 빨간색 티코. 19만 킬로미터를 뛴 이 작은 차에 앞집 사는 아저씨가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낙서를 한 바람에 완득이가 아저씨를 때린 사건. 결국 완득이의 담임인 똥주가 나서서 법 전공 사회선생님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무마하고 난 뒤의 상황이다.
'우리는 치료비를 주지 않았고, 앞집 아저씨도 티코 도색 비용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티코에는 여전히 씨불놈이라고 써 있다. 그나마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건 빨간색 네임펜으로 글씨를 덧씌웠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종종 해야 할 것 같다. 앞집 아저씨는 똥주만 보면 뻑큐를 날린다. 똥주는 앞집 아저씨만 보면 입모양으로 '좆까'라고 한다. 낙서 사건으로 똥주가 학교 선생님인 게 동네에 알져져 체면상 소리까지는 내지 못했다.'
씨불놈이라는 단어의 사연을 앞에서부터 읽어온 독자로서는 눈물 나게 웃기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실로, 내가 '나비처럼 우아하게 날 때 상대가 벌처럼 쏘'는 세상에서 살맛나는 이야기 한 자락이다. 마당놀이 한 편 신명나게 구경하고 난 기분. 완득이는 교회에 가서 똥주 좀 죽여 달라고 빌다가 어느새 똥주와 예수님의 얼굴이 겹쳐보이게 됐다는데, 나도 만나 보고 싶다. 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