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엄마의 전쟁 일기 33일, Reading Asia
림 하다드 지음, 박민희 옮김 / 아시아네트워크(asia network)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팔레스타인이 뭔가에 대해, 그것이 지역의 이름인지, 민족의 이름인지, 혹은 종교적 공동체의 이름인지에 대해서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막연한 상식만 가지고 있던 내게 최근 <유대인>, <이슬람>,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을 한꺼번에 읽을 기회가 생겼다. 이 책을 받아 하루만에 읽고도 선뜻 리뷰 쓰기 버튼을 누르지 못한 것은 나머지 세 권의 책이 충분히 읽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까지 네 권의 관련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내 머릿속은 부옇다. 명확한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간 숱한 책에서 이유 없이 끔찍한 살육의 대상이 되어온 저 안네의 민족, 유대인은 이 책 <아이들아~>에서는 잔인한 살인자로 묘사된다.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레바논을 자신들의 욕심만 위해 공격해대는 반인도주의적 집단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마지막에 가서야 평화를 운운하지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건, 그들이 자본과 무력을 앞세워 몸밖에 가진 것이 없는 아랍인들을 탄압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들이 그 전에 당했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은 땅을 중심으로 한 아랍 민족의 연합체이고, 지금은 살던 땅에서 쫓겨나 몇몇 지역에 나뉘어 존재하거나 인근의 나라들에서 난민 거주지를 형성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임시정부 형태로 대표기관(PLO)을 가졌다. 한 마디로 독립국가가 아니며, 이스라엘에 의해 음으로 양으로 지배당하는 삶을 산다. 따라서 마치 우리가 일제에 대해 그랬듯이 끊임없이 소규모 무력투쟁을 하거나 테러를 하는 집단들이 존재한다.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나라, 레바논의 정당 중 하나이며, 이슬람의 기치 아래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무장단체이기도 한데, 반 이스라엘 및 이슬람주의가 팔레스타인과 동질성을 형성하며,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저자인 림 하다드는 레바논의 부유한 기독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이다. 아버지가 의사여서 레바논이 이스라엘 침공 때문에 전쟁을 겪자 한 동안 미국으로 건너가 살며 교육받고, 다시 레바논에 돌아와 기자로 일한다. 그녀는 동료인 영국인 닉과 결혼해 두 아이를 데리고 살다가 다시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불바다로 변하는 베이루트를 떠나 산 속 저택을 빌려 3주간 피신해 살며 전쟁터를 누비는 남편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33일간의 악몽을 이 책으로 펴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희생된 어린아이들 그리고 자식과 남편, 친척들을 잃은 피눈물 흘리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이 책을 쓰게 한 동기이다. 전쟁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다음 세대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나는 한 어미로서,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들은 성인으로서 이 책의 모든 내용에 참으로 공감한다. 그 어떤 이유도 무고한 생명의 살상에 대한 이유가 될 수 없음에 통감한다. 그러나 저자에 대해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평화를 논하는 책의 저자에 대한 내 기대치가 너무 커서 그럴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읽히는 림은 그저 이기적이고 소시민적인 한 어머니, 아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누리는 자의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을 때는 무관심하다가, 피해자의 입장이 되니 흥분하는 모습. 미국을 통해 많은 것을 얻으며 미국 스타일로 살아가다가 가까이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니까 그제서야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스라엘과 그 뒷배가 되어 주는 미국에 대해 적개심을 불태우는 모습이 그랬다. 어쩌면 자신이 끔찍한 일을 당하고도, 더 큰 의미의 용서를 보여주는 <내 이름은 임마꿀레> 같은 책에 너무 익숙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말하자면 '엄마의 전쟁일기'라고는 하지만 저자 자신이 '목격자'에 머물고 있으므로 솔직히 말하면 깊은 감동은 주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이 지역에 대한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매우 의미롭다. 그리고 어떤 명분이 폭력이나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폭력은 가하는 자나 당하는 자 모두를 차츰 무디어지게 한다. 폭력에 대한 갚음은 폭력밖에 없다고 여기게 만든다. 어린 아이들이 총을 들고 이스라엘로 몰려들게 만든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결국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 따지고 보면 지금 중동의 모든 비극적 상황도 유럽열강의 식민지 지배의 잔해들이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성장한 신흥강국 미국의 욕심의 배설물이다. 이스라엘의 팽창주의를 막을 자는 그들이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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