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 횡단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땅
윌리엄 랑게비쉐 지음, 박미영 옮김 / 크림슨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숱한 이들이 사하라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사하라와 맞닥뜨릴 간담을 지닌 이는 많지 않다. 사하라는, 말하자면 모든 허울을 벗기는 극한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하라, 사하라... 노래를 부르는 내게 남편은, 하루만 사하라에서 무서운 열기와 냉기를 견디고, 지독한 외로움, 모래 섞인 음식을 견디면 상을 주겠다고 큰소리친다. 근거 있는 큰소리이리라. 비행기 타고 휙 날아가, 에어컨 빵빵 켜진 관광버스를 타고 사하라 입구에 내려서, 단 몇 시간 광대무변을 뒹구는 것, 그게 내가 꿈꾸는 사하라의 한계일 가능성, 크다. 그럼에도 나는 사하라를 꿈꾼다. 사는 일이 팍팍해 일상을 아무리 짜 보아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느낌일 때, 오히려 더 사하라를 꿈꾼다. 거기서는 누구나 투아레그의 전사로 화할 것만 같은 낭만을 어쭙잖게 꿈꾼다. 

  사하라는 왜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이 아니고 꿈일까. 이 책은 그 꿈을 깨고, 또 꿈을 주는 책이다. 사하라가 사하라인들에게 척박한 현실임을 일깨우고, 외지인이 왜 사하라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없는지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러면서도 삶에서 한 번은 사하라인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새로이 꾸게 한다.

  이 책에서 보는 사하라는 그저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에서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내전이 끊이지 않으며, 무질서와 무법이 난무하며, 가난과 체념, 죽음이 일상인 '버려진 땅, desert'이다. 그곳이 사하라가 아니었더라면, 벌써 어떤 식으로든 결론지어졌을 지루한 싸움들. 그러나 사하라이기에, 그곳의 삶은 느리고도 느리게 흘러간다. 사하라는 그 누구도 자기 위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도록 용납하지 않는 제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하라인들은 사하라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하라에서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일 때문에, 구경하고 싶어 찾아간 사람들에게, 사하라가 지옥을 보여주는 것은 그 얄팍한 호기심과 오만에 내리는 징벌일지 모르겠다. 

  사하라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사하라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일 이 저자는 그야말로 사하라를 발로 걸으며 횡단해냈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지만, 그 일로 펄쩍 뛰며 사하라 간 일을 후회하는 따위의 유치함을 보이지 않는다. 잘 사는 미국의 백인이라는 사실에서 우러날 법한 어쭙잖은 우월의식도 '거의' 없고, 편한 자리를 찾아 몸을 뉠 생각 없이 그저 사하라를 건너간다. 아마, 사하라를 느끼는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싶고, '아, 나는 안 되겠구나.'싶은 자조도 전해 준다. 사하라라는 이름은 치기 어린 구경을 용납하지 않는 곳이란 느낌. 그래도 저 사막 가운데, 장대하게 자리한 암벽화를 한 번쯤 보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꿈틀거리기는 한다. 

  1996년에 저자가 쓴, 꽤 오래된 이야기다. 10년이 더 지난 셈. 어디나 경찰, 군인이 나그네를 세워, 하루나 이틀을 잡아두고 뇌물을 받고서야 보내주는 모습인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하다. 좀 더 최근의, 사진이 보태진 책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내용으로 보아 당시에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듯하기는 하다. 그냥, 그처럼 긍지 높다는 약탈자, 지금은 더러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한 투아레그 족의 모습이 하도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보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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