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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바다 ㅣ 힘찬문고 49
김일광 지음, 이선주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1월
평점 :
묘한 인연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포항 인근의 구룡포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내 고향이다. 저자인 김일광 선생님은 포항여고에서 수학을 가르치셨던 은사의 존함과 같다. 그리고 요즘 나는 새엄마나 새아빠와 살아가는 아이들의 내면에 관심이 많아 관련된 책을 리스트업하고 있다. 그런저런 인연으로 이 책을 받아보며 남다른 감회에 빠졌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와의 인연과 무관히 순수하게 책 자체의 감동 때문에 뭉클한 심정에 쌓였다. 다빈이 할머니의 지난한 삶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바다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을 감싸는 넉넉함에 숙연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다빈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남은 생을 채울 수 있을까? 그처럼 아름답게 나이 들어 갈 수 있을까?
다빈은 새엄마와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다른 이를 엄마로 받아들이기가 누군들 쉬울까. 결국 다빈의 실종 소식이 바닷가 친할머니 귀에 들어가고, 할머니는 여든 해를 살아낸 몸으로 도회지(포항일 것이다)의 다빈네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간다. 그리고 귀가한 다빈을 데리고 바닷가로 돌아온다.
할머니는 다빈이가 아까워 무엇을 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시어머니도 내 딸들을 아깝다고 하셨고, 내 어린 날 우리 할머니도 나를 아깝다 하셨다. 모든 할머니의 사랑이 진하게 풍기는 이야기. 사람을 아깝게 여길 줄 아는 그 할머니들의 삶은 우리 상상 이상으로 고단했음을 이제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자신들의 몸을 거름으로 삼아 자라는 핏줄들을 한없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다빈이 할머니의 삶은 고단하다는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로 지난했다. 열아홉살 나이에 가난함에서 벗어나고자, 한 남자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배 밑바닥에 숨어 이틀을 항해한 끝에 도착한 곳. 거기에는 남자의 부모와 시동생, 시누들과 아이 넷이 있었다. 열아홉 나이에... 그 아이들을 감싸안으며 펑펑 울고서 그녀는 모두의 어머니로, 해녀로 60년을 살았다. 딸 넷 있는 집에 시집 와서 다시 딸을 넷이나 낳고 막내로 늦둥이 아들, 다빈이 아빠까지 낳아 아홉 자녀를 몸 하나로 길러냈다.
그 세월 동안 그녀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겪어낸 이야기가 얼마 만큼일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가 말려 만드는 미역 중 아홉 단은 늘 자식들에게 가는 몫이다. 똑같이 정성스러운 미역 아홉 단. 다빈이는 그처럼 좋은 할머니가 고모들의 새엄마였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리고 새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다빈이가 집으로 돌아가 새엄마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어쩌면 친엄마와보다도 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노력하고 마음을 열어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관계가 그냥 주어지는 관계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빈 할머니가 귀신 같이 맡는 바다 냄새가 이 책에서도 풍겨나오는 것 같다.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 마음에도 다빈 할머니의 아름다움이, 그리고 한없이 깊은 바다 냄새가 스미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