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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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완역! <돈키호테>를 악전고투 읽은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방대한 양이라니! 이 책이 근대소설의 효시로 불린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었다. 뿌듯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힐까, 그게 더욱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알맹이 빠져 버린 다이제스트가 더 이상 성에 차지 않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엄청난 완역을 누구더러 읽으라는 것이냐 하면 또 할 말이 없고..그런데, 이 책이 그 고민을 다소 해소해 주었다. 적당히 축약되었으면서도 적당히 길고, 1, 2편 모두에서 빠진 부분이 거의 없다.
 

  완역을 떠올려보니, 주로 빠진 부분은 작가의 세상, 인생, 사랑, 정치, 법, 제도 등등에 대한 생각들이고, 꽤 장황한 그런 이야기가 청소년들에게 잘 읽히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효과도 별반 없으리라 싶다. 그래서 이 책이 알맞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머리맡에 두고 며칠 읽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번역이 원문의 맛을 살리면서도 적당히 현대적이어서 좋았다. 더러 킬킬거리기도 하고, 더러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책을 읽고 나니, 돈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한 친밀감이 샘솟는 느낌. 더욱이 산초 판사에 대해 무한히 솟구치는 애정.
 

  그는 돈키호테처럼 미친 사람도 아니고, 후반부 섬의 총독이 되어 다스리는 모습을 보면 바보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돈키호테의 인간됨을 파악하고, 그를 존경하였기에 풍차를 거인이라 해도 믿으려 애썼고, 더러 채찍으로 얻어맞는 일을 달게 감수하고 그의 종자가 되어 따라다닌다. 참 애정이 가는 거꾸리와 장다리, 두 인물이다.
 

  주지하듯 돈키호테는 햄릿과 더불어 인간의 부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캐릭터이다.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이 두 인물을 창조해 놓고 한 날 죽었다니,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마저 있다. 햄릿 형은 현대에 부지기수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드물다. 그처럼 순수하고 저돌적이며, 곧은 사람이 있기가 쉽겠는가. 옳다고 믿으면 그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무릅쓰는 순수한 용기. 문제는 그가 옳다고 믿은 것이 광기에 의한 착각이라는 점이겠지만, 무릇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은 정말 옳은 것일까 하고 자문해 볼 때, 그 역시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돈키호테는 멋있었다,라고밖에 결론 내려지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죽음으로 지킬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주변의 애정에 의해 가짜 기사에게 패하고 약속대로 편력을 접는다. 그리고 앓다가, 제정신으로 죽는다. 조카딸에게 유산을 남기며, 기사에 빠진 인물과 결혼할 때는 유산 상속을 취소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제정신으로 그는 살아갈 힘이 없었던 것을 게다. 독자인 나는 도저히 그의 제정신을 축하해 줄 수 없다. 사람을 죽이는 제정신이라...
 

  세르반테스 자신의 삶이 험난했음을 생각해 볼 때, 이 소설은 유쾌하고 슬프다. 여운 있는 작품. 그래서 <돈키호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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