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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네의 가을 - 4미터 그림책 ㅣ 4미터 그림책 (수잔네의 사계절)
로트라우트 수잔네 베르너 지음, 윤혜정 옮김 / 보림큐비 / 2007년 12월
평점 :
죽 펼치면 4미터나 되는 아코디언 형태의 보드북, 수잔네의 사계절 중 가을 편.
수잔네라고 해서 주인공의 이름이 수잔인 줄 알았다. 수잔이네^^ 다시 생각해 보니 수잔네는 아마 북유럽쪽에서 우리가 스잔나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 이름일 것 같다. 수잔네는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동네사람들 중 한 명이다. 봄, 여름을 보지 못해서 수잔네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지만 책방 할아버지를 위해 꽃장식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뒷표지를 근거로 생각해 보건데, 매우 다정다감한 성품의 노처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잔네가 만든 것은 꽃장식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낙엽을 모아 엮어서 가을 냄새가 나는 일종의 잎장식을 만든 것이다. 가을이니까.
우선 수잔네부터 발길을 따라 가 보기로 했다. 표지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당산나무쯤 되는 나무 아래로 수잔네가 배낭을 메고 요상한 모자를 쓰고, 꽃무늬가 눈에 확 들어오는 옷을 입고 가을 길을 걸어가고 있다.
표지를 넘기면 커다란 집이다. 독자를 위해 투명 통유리창이 달린 것처럼 속을 모두 내보이고 있는 3층짜리 집. 3층엔 개구쟁이 어린이가 사는 듯, 온통 어질러져 있고, 2층은 정서가 풍부하며 살림을 무척 잘하는 누군가가 사는 집인 양 오밀조밀 정돈돼 있다. 1층에는 아기가 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여실하며, 아니나다를까 엄마와 아기가 보인다.
뒷표지에는 이 동네에 사는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만 다 외기는 어렵고, 일단 수잔네부터 찾아본다. 도대체 수잔네는 몇 층에 사는 거지? 이 집이 수잔네의 집이 아닌가 본데? 혹시 1층 옆에 붙어 있는 헛간에 사나? 결국 수잔네의 집이 어딘지를 알지 못하는 채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가을을 즐기느라, 겨울을 준비하느라 바쁘지만 둥근 호박이 여럿 보이는 걸로 봐서는 호박등 축제 같은 것이 열릴 모양이다. 수잔네의 걸음을 따라 앞으로(책에서는 오른쪽) 나아가면 조그만 농장이 나오고, 과일가판대, 카센터, 주유소 등이 나오면서 점차 시내로 들어가는 분위기가 살짝 풍긴다. 낙엽을 주워 장식을 만드는 수잔네 뒤로는 청소 아저씨가 비질을 하고 있다.
다음 페이지는 역 앞이다. 어디나 그렇듯이 역은 붐비고, 사람들은 바쁘다. 역의 천장에 역시나, '신나는 가을축제' 광고가 붙었는데, 등불축제는 그 일환인 듯하다. 수잔네는 이제 제법 길다란 장식을 만든 참이다.
페이지를 넘기면 그야말로 다운타운이다. 백화점과 각종 빌딩, 교회가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모두 갖가지 모양의 등불을 들고서 축제를 즐기려는 들뜬 얼굴. 3층 집 1층에서 보았던 아기와 엄마도 맨 앞에서 등불을 들고 서 있다. 수잔네의 잎 장식은 이제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길다.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은 시계탑 광장. 색전등이 반짝거리고, 책방 아저씨는 이제 수잔네가 선물한 잎장식을 책방 잎구에 달고 있다. 수잔네는 어떤 아저씨와 신나게 춤을 추고. 그런데 수잔네의 예의 그 묘한 모자가 그만 분수에 빠져 물에 젖고 말았다. 이런~ 많이 속상한 걸까? 사람들이 공원에서 음악회를 즐기는데 수잔네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수잔네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찾다가 책 끝까지 왔다. 수잔네 한 사람만 따라가기에도 숨이 찰 정도. 아마 등장인물을 모두 파악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뒤를 따라다니자면 한 달은 걸릴 것 같다.
글자 한 자도 없는데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 월리를 찾아라 같기도 하지만 훨씬 더 다정다감한 책이다. 4미터를 쫙 펼쳐놓고 위로 걸어다니면 마치 가을 속을 걷는 기분이 될 것만 같다. 그리고 수잔네의 동네사람들, 너무 마음에 든다. 이웃 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