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시 사마공원의 사마천 동상. 
      그의 얼굴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 있다고 한다. 
      억울함의 호소인지, 혹은 역사 위에서 미래를 향하고 있음인지. 궁형 이후 수염이
      모두 사라졌지만 대부분의 그의 초상이나 동상에는 수염이 있는데,
      그에 대한 존경의 의미라고.
 
       문자학의 대가로 유명한 곽말략의 글과 글씨로 쓰인 사마공원의 기념비문
 
       임시로 사다리를 놓고 어렵사리 올라간 곳에 사마사원이 있다. 낮에, 
       여럿이 함께가 아니면 찾아올 수 없을 폐허. 이곳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은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겨운 이들에게는 역부족.
 
       사마서원 내부.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과 조부의 무덤. 역시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 
       사마천에게 아버지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달게 받으며 <사기>를 쓰게 한 
       원천이자 스승이었다.
  
       宮行王法. 네 글자는 궁형이 왕에 의해 내려졌다는 의미를 감추고 있다 한다. 
       모르는 이에게 법왕의 행궁이 있는 자리를 표시한 문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이 낡은 문은 사마천의 후예들이 사마천의 정신을 잊지 않고자 모색한 여러 
       시도 중 하나이다.
 
       사마천의 고향 서촌에 자리한 사마천 사당 입구.
 
       風追司馬. 사마천의 정신과 행동을 본받겠다는 의미. 수천 년 전 권력자의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 분석, 비판하고 옳음과 약자의 편에 섰던 사마천의 風이 
       다시 한 번 불 수 있을까?
 
       유일하게 꽤 잘 가꾸어진 유적인 사마천의 무덤. 한성시 남쪽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지천의 비탈에 세워져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사마천은 홀연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이 무덤에 사마천은 없다. 사마천이 옹호했던 북방민족의 
       무덤 형태를 본떠 조성된 무덤은 둥그런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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