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저녁, 나무 몇 그루 심어진 비 오는 마당을 내다 보며, 함석 지붕으로 떨어지는 또르락 또르락 소리에 귀기울이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이 책을 펴들면서. '바로 그 집이다! 나 어릴 때 살던 집.' 이런 소리를 조그맣게 내뱉었다. 그 기억 속의 집에서 아이는 턱 괴고 밖을 보고 있고, 엄마인 듯한 사람은 조금 떨어져 그저 듣고 있는 듯한 그림. 그럴 거라... 어른들은 비에 크게 감동받지 않으니까. 그런데 다음 페이지에서는 아이가 귀로만 빗소리를 느끼는 모습이 이채롭다. 아이 나이치고는 깊은 느낌으로 빗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사실 아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으로 듣는 법을 벌써부터 알고 있는 조그만 아이. 엄마는 눈을 감고도 무지개를 느낄 수 있지만, 친구들은 그저 엄마가 앞 못 본다고만 놀리니까 아이 얼굴은 빨개지고,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갑자기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이 조그만 아이의 다친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몇 번이나 책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책 속, 마치 숨쉬는 듯한 아이의 뺨에 손을 대보고 싶어서다. 그 엄마도 아이의 뺨에 손을 가만히 대보면서 많은 밤을 보냈을 거라는 느낌. 자식을 둔 어미의 마음, 엄마 치맛자락을 놓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잔잔히 전해져 오는 그림책. 무지개는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아름답다. 엄마와 아이는 함께 있을 때 늘 아름답다. 잠 잘 때 가만가만 머리 쓰다듬으며 읽어주고픈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