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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방 ㅣ 그림책 보물창고 3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이유진 옮김, 한스 아놀드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언젠가 보았을 법한, 마법의 세상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소원을 기막히게 알아차려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린드그렌다운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일곱살 베라는 평범한 소녀이지만, 윌바리라는 매우 특별한 친구가 있다. 쌍둥이 동생인 윌바리는 태어나자마자 달려나가 장미 덤불 아래로 숨어버렸기 때문에 엄마, 아빠도 그 존재를 모른다고 한다!
윌바리는 동생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서 외톨이가 된 베라에게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주며,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비밀의 방의 여왕이다. 금빛 벽이 눈부신 그곳에서 둘은 함께 물놀이를 하고, 부모님게 여러 번 졸랐으나 기르는 걸 거절당한 작고 까만 푸들 기르기도 할 수 있다. 난쟁이 리코가 맛있는 걸 얼마든지 말들어 주는가 하면, 금빛과 검정의 말을 나눠 타고 요정의 나라로 놀러가기도 한다.
중간 쯤부터 독자는 윌바리와 비밀의 방의 모든 것이 외로운 베라의 상상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지만, 굳이 파헤쳐 보지 않기로 하고, 그저 베라와 윌바리의 뒤를 따른다. 살리콘(둘만이 부르는 장미 덤불의 이름)의 장미가 시들면 죽을 거라는 윌바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독자 역시 강하게 고개를 흔들게 된다. 제발 분신과도 같으며, 언제까지나 자신을 사랑해 주고, 바라는 걸 모두 이루어 줄 누군가가 멀리 가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베라의 마음에 동화된다.
그랬던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께 혼이 난 뒤 내 방에 혼자 앉아 일기(일기장 이름이 신우信友였던가.)를 쓰노라면 안방에서 들리는 동생들과 부모님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외로움을 사무치게 했던가,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랐다. 말도 안되는 동화를 쓰고, 그 속에서 사랑과 자유를 만끽했던 날들도 떠올랐다. 그리고 코피가 펑펑 쏟아졌던 어느 날 밤 자전거 뒷자석에 나를 태우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리던 부모님들의 표정에서, 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고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며칠도 떠올랐다.
그렇게 커 왔구나.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가면, 또다시 어디로 숨고 싶은 순간이 적지 않게 닥친다. 그럴 때는 잠든 아이의 얼굴에서 깊은 위안을 찾는다. 그렇게, 주고받으며 우리는 나아가는 것이다. 베라는 진짜 푸들을 선물 받고, 윌버리와 작별했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비밀의 방 어디쯤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굳이 들여다 볼 필요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