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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피리 꽃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3월
평점 :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더이 상 그 힘에 고통받기만 하지는 않겠다.
부모님이 바란 대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성장해 왔다.
두 번이나 생명의 위험에 처했지만 두 번 다 목숨을 건졌다.
그 중 한 번은 스스로 죽음을 원했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것은 분명 운명이 나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때까지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힘, 불확실한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을 몸 안에 간직한 채.
언젠가 이 몸이 스러질 때까지.
정말 죽어야 할 때가 올 때까지.
힘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
그리고 그 힘으로 무언가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다.
지금은 아직.
지금은 그것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하자.
내일을 생각하자.
몸 안쪽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고요한 힘을 느끼면서 도모코는 눈을 감았다.
-스러질 때까지 88페이지
"초가 타고 있어요."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준코의 모습이 약간 움직였다.
"여러 생각을 했어요."
"어떤?"
"산다는 게 뭔지."
장전된 한 자루의 총으로.
"저는 살인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건 사과할께요. 하지만ㅡ."
"하지만 해야 해요." 준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다 씨도 저와 같은 입장이 되면 분명 그럴 거예요."
그럼 당신은 신의 대리자가 되는 겁니다ㅡ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존재가.
눈을 들자 집 안의 불빛이 보였다.
창가에서 반짝이며 타오르고 있다.
유키에의 촛불이 발하는 빛이었다.
-번제 184~185
"구적초는 말이죠, 노래를 해요."
"꽃인데?"
"예. 바람이 거센 밤이나 이른 아침에요.
바람이 꽃잎을 스쳐 지나갈 때 소리를 낼 뿐인지도 모르지만, 분명 노래해요.
그것도 마치 비둘기피리 같은 소리를 낸다고요.
저도 딱 한 번뿐이지만 들은 적 있어요."
그 사람은 그 모습을 가리켜 자신과ㅡ자신들처럼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사람들과 닮았다고 말했다.
"노래할 수 있는 꽃이라니, 꽃 중에서는 이단아잖아요.
그래서 몰래 숨어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비밀스럽게 노래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은 말했어요.
구적초는 분명 노래하는 걸 좋아하리라고.
눈에 띄지 않고 전혀 아름답지도 않은 수수한 꽃이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줄기고 있으리라고요."
그렇기에 노래할 수 없게 되면 슬퍼하겠죠, 아무리 꽃이라도요 ㅡ 다카코는 그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봉공했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묘하게 예스러운 말씨가 생각났다는 게 좀 우스웠지만, 괜찮지 않은가 예스러워도, 나는 공복公僕이니까, 라고도 새악했다. 나는 공복ㅡ이었다. 그 힘, 지금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힘 덕분에.
구적초는 꽃뿐 아니라 잎의 모양도 용담과 닮았는데, 용담보다는 보잘것없고 줄기의 길이도 짧다.
꽃이 지면 그것으로 사명을 끝냈다는 듯 잎과 줄기도 힘없이 시들어 버리고, 뿌리 근처에 떡잎 같은 평평한 잎이 몇 장 남을 뿐이다.
능력이 사라지고 나서도ㅡ만약 살아 있을 수 있다면 다카코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있을까?
'새 삶을 살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 능력 없이도 처음부터 다시 살아갈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비둘기피리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