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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해서 다정한 다정 씨 ㅣ Dear 그림책
윤석남.한성옥 지음 / 사계절 / 2016년 2월
평점 :
화가 윤석남님의 드로잉 32점과 에세이가 담긴 첫 그림책이라고 하네요.
이 책은 제목이 예쁘고 그림이 독특해서 무척 궁금했던 책이였어요.
계속 상품페이지 들어가서 미리보기를 보고 있는데 옆지기가 용돈을 주네요.
자꾸 보지 말고 직접 구입해서 보라고요. ㅎㅎ
옆지기도 옆에서 미리보기를 보다가 그림이 "괜찮네" 그러더라구요.
이 책을 구입하면서 보고싶었던 다른 그림책 몇 권 구입을 했답니다.^^
그림이 은은하고 좋아요.^^
이 책을 안 봤다면 후회할 뻔 했어요.
저한테는 무척 좋았던 책입니다.
선물용으로 딱!!! 좋은 것 같아요.^^
다정해서
스물일곱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가
마흔 들어 내 방을 갖게 되었어요.
드리운 볕 가운데 한참 있으니까
여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어요.
내가 보인다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돌아서서
검은 자루 속에 숨어
숨죽이고 있다
두렵고 무서운 게 많은 시절이었어요.
나는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 텅 빈 자리에 너도 들어오고 당신도 들어오고
그들도 들어왔으면 좋겠어
그렇치만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
내가 나를 너무 꽉 채우고 있어
구멍을 낼 수 없지
문이 없으니 예쁜 당신들 가 버리고
미운 당신들만 남았어
허공에 매달려 살았어요.
왜 이렇게 춥지
오늘은 내 방이 낯설어 한참 헤맸다
간밤에 너무 많은 여행을 했나 보다
나도 오늘은 배추밭에서 하루 종일
볕이나 쏘일까 보다 한다
나도 심심해지면
밤마다 정신 잃는 꿈은
안 꿀지도 모르지 않을까?
우물 찾아 30000번 비인 두레박을 드리운다면
혹시 우물이 내게로 오나?
내 나이 스물일곱일 때
나는 사랑과 일 사이에 당연하다는 듯이
사랑을 선택했다
이제 우리 아이가 스물일곱이 되었는데
일에만 파묻혀서 결혼은 차차 하겠다고 한다
내가 어머나 좋아라고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하니
이러한 나를 아이가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그러는 거지?
어여쁜 사이. 내 딸이에요.
"우리 엄마는 화가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엄마가 왜
잘 팔리지도, 예쁘지도 않은
매일 똑같은 그림을
만들고 있는지
나는 정말 알고 싶다 그래서
엄마에게 얼굴을 돌리면
엄마는 벌써 딴청을 하고 있다
아마 할 말이 없나 보다
그렇게 이해한다."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깃털보다 가벼워서
답삭 안아 올렸더니
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
그걸 보신 우리 엄마
"얘야, 에미야, 우지 마라
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
그렇니라" 하신다
아, 어머니
내 벗들, 내 님들, 내 다정 씨들.
남부터미널에서 만난 할머니
이거 전부 팔 거냐고 묻는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아녀 - 아녀- 이것 모두
서울 사는 우리 아아들 줄 것이여
여들 괜찮여. 모두 다 농액은 한 방울도
안 친 것이여. 갸덜 먹을 건듸" 하셨다
참 야속한 세상이다
모두 다 예쁜 당신들.
아가야! 천금 같은 내 아가야
널랑은
골목대장 되거들랑 동네대장 되지 말고
동네 대장 되거들랑 너라대장 되지 말고
나라대장 되거들랑 세계대장 되지 말고
세계대장 되거들랑 자리 얼른 내어 놓고
집으로 돌아와서 밭이나 갈으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