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싸나희 순정
류근 지음, 퍼엉 그림 / 문학세계사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차장 밖으로 도라지꽃이 보이는 것이었다.
가난과 슬픔의 양 손으로 양육당하던 유년의 길가에
피어나던 꽃.
도라지꽃.
나의 거의 본능적으로 열차에서 내려 꽃밭으로 달려갔다.
염소처럼, 어린 목매기송아지처럼 꽃밭에서 뒹굴었다.
할머니 이봐유! 시방 거기서 뭐하는 거유?
나 저, 저기... 여기다 뭔가를 잃어버려서요.
할머니 ...뭘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내 보기엔 아저씨 정신 먼저
챙겨야겠슈. 애저녁에 얼이 다 빠져 버렸구먼유.
나 어어~ 어어~ 얼이 다 빠진 게 보이세요?
할머니 얼빠진 소리 하지 말고 경찰 부르기 전에 어여 나와유.
시방 내 농사 다 망치고 있슈.
아아, 나는 이제 이 마을에서 살아야겠다.
도라지꽃이 흰빛과 보라빛으로 나부끼는 마을에서 얼빠진 사람처럼 살아 봐야겠다.
그런데 당장 오늘 밤엔 어디서 이 흐린 몸을 눕히지?
아아, 얼빠진 인생이여, 시바.
부추 밭 한 귀퉁이에서 새참 시간을 쪼개 이 글을 쓴다.
하루에 1천 그램씩 살이 빠진다.
인생 조낸 땀난다, 시바. P.57
유씨는 싸나희의 순정을 몰러유? 싸나희의 순정 말유.
싸. 나. 희. 의. 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