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질의 사이학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31
고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이의 말씀




가벼운 무릎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 한 장의 처세가
웅숭깊다



승객들 무릎과 무릎 사이를 옮겨 다니는
종이 한 장의 표정을
더듬더듬 읽는다
공복에 기댄 탓인가, 공손한 글자들이 자꾸
시선 바깥으로 떨어져 나간다



종이의 말씀을 새겨들을 줄 알아야
좋은 시인이라고
어머니 살아생전에 목구멍에 칡이 돋도록
말씀하셨는데



더듬더듬, 띄엄띄엄 읽어 나가는 동안에도
종이의 공손함은 볌함이 없다



손가락 없는 손이, 고개 숙인 노파의 손이
죄 많은 무플에 닿을 무렵
자세를 고쳐 앉아
무릎과 무릎이 벌어지지 않게
종이를 떠받들고
나는



웅숭깊은 나무를 품은
연필 한 자루를 공손히 받아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