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국의 서정시 84
유자효 지음 / 시학(시와시학)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




바다는 너그럽다
무수한 생명들을 품에 안고 먹이고 키운다
생명이 비롯된 것도 바다가 있음으로서였다



바다는 무섭다
한번 노하면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자신이 만들었던 생명들도 거두어 간다



한없이 너그럽던 공자님도 예수님도 때로는 무섭게
화를 내셨다

춘분




음과 양이 지상에 균형을 이루었도다
음은 양을 그리워하고
양은 음을 그리워하며
헤어지고 만나며
만나고 헤어지며
생명을 만들고
거두어 가며
세상을 충만하게 이루는구나
오 비로소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으니
음과 양이 지상에 균형을 이루었도다




3월의 마지막 날
옷을 버린다
50년 동안
아까워 버리지 못한
옷이 수십 벌
옷장 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무더기로 실려 나간다
빌려 입은 외삼촌 양복 같은
옷들이 모두 실려 나간다
아 내가 이렇게 살이 쪘었구나
참 보기 싫게 비대했구나
그 욕심은 다 어디로 가고
다시는 입지 못할 세월의 크기
욕심을 비워 내듯
옷을 버린다

감기



더 갈까
그만둘까
늘 망설인 내 인생



목에 걸려 괴로운
기침처럼
가래처럼



언제나 미열의 상태
뱉지 못한 아우성

부끄러움




뭇 풀 속에 함초롬히 몸 감춘 네 잎 클로버
손대면 소스라치듯 오므라드는 함수초
세상에 나서지 않고 숨어 버린 들풀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12-08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