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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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를 맞으며




그 여자가 하는 소리는 늘 같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아들을 살려내라.
움막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구멍가게 자리에 대형 마트가 들어섰는데도
그 여자는 목소리도 옷매무새도 같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을 서는 대신
모두들 제 스마트폰에 분주하고
힘들게 비탈길을 엉금엉금 기는 대신
지하철로 땅속을 달리는데도
장바닥을 누비는 걸음걸이도 같다.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세상이 달라졌어요 할머니 세상이.
이렇게 하려던 내 말은 그러나 늘 목에서 걸린다.
어쩌면 지금 저 소리는 바로
내가 내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세상이 두렵고 내가 두려워
속으로만 내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20~21쪽

아무도 듣지 않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올해도 죽지 않고 또 온 그 여자의
각설이타령을 들으며 걷는
달라진 옛날의 그 길에 시적시적 봄비가 내린다.-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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