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원성 글.그림 / 이레 / 1999년 8월
절판


출가



어머니는 나를 절에 데려왔다.
어머니의 서원誓願으로 나는 출가하였고
나의 출가는 어머니의 원력이었다.


세 아들 모두 출가시키려 했던 어머니
막내둥이만 성공했다 기뻐하시기만 했던 어머니
출가한다 말했을 때
당장 내 손 이끌고 산에 왔을 때
야속도 하지 원망도 했었다.
내가 왜 출가하고자 결심했는지
속내도 알려고 하지 않고.


-마음을 닦으러 이곳에 왔단다.
-닦을 마음이 어디에 있나요.


버렸으나 버린 것이 아니래요.
떠났으나 떠난 것이 아니래요.
하지만 나는 버렸고 미련 없이 왔다.


-욕심에 찌들은 속세가 탁하니 절대 산을 내려오지 말아라.
-그 어디가 세속인가요.


산을 내려가시는 어머니
욕심에 찌들은 속세로 가실 어머니
내게 많은 생각만 가득히 심어 주고...


- 17쪽

첫 삭발



슬픔 가지곤 웬만한 설움 가지곤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내가
새벽 먼동에
파르라니 깎은 머릴 매만지며
나의 믿음이신 그분의 품에 이르러서는
그만 흥건히, 흥건히, 목놓아 울어 버렸다


찬 눈 몰아치던 간밤에
좌복을 함께 적시던 알알이 3천 주.


하얀 눈서리가 장삼 등골에 맺혔더랬어도
가슴 싸늘하게 쓸어 내리는 풍경 소리가
나를 놀라게 해도
한 마음 오직 한 생각.


샘가에 이르러 꽁꽁 언 살얼음 깨고
옥수를 긷는 붉은 손가락.


오늘을 기다려 사뭇 시집살이 억척 마당쇠였던
행자 생활.
끝내 운명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첫 삭발
머리처럼 송송한 세상의 인연이
부뚜막 장작과 함께 훨훨 타오르던 날.- 18쪽

절을 하다가



3천 배 그 긴 시간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불효했던 것만 생각난다.


다시는 못 만날 것만 같은 생이별의 현실과
이렇게 장성하게 키워 주신 그 노고에
목메여
두 눈 퉁퉁 붓도록
울었다.


장삼 등골 흰 서리와 함께
구슬땀 흠뻑 젖은 좌복 위에서
16살 하얀 손가락, 두 눈을 움켜쥐고.- 21쪽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



산새들 모아
흰 구름 불러
물소리와 함께 머리맡에 두고
쪽빛 바람 실리운 대로
고운 산 찾아
깊은 고요에 들어
심연의 나와 만난다
이리도 고요한 한낮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 25쪽

동산에 올라



간간이 들려오는 풍경 소리
소쩍이 울음 소리
창호에 스며드는 달빛에
울렁이는 마음을 움켜쥐고


길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반딧불 따라
동산에 올랐습니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참을 수 있지만
솟구치는 그리움은 어쩔 수 없어
목놓아 이렇게 울어 봅니다.


목이 쉴 때까지
밤이 새도록.- 28~29쪽

목어 아래서



꿈결 속이었습니다.
내 안으로 헤엄쳐 들어온
물고기 하나.
산으로, 바다로, 하늘로
나를 이끌어
사무치도록 끝닿지 않는
지평의 어둠 속.


시작도 끝도 없는
고해의 바다 위에서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깨려 해도 깨이지 않는
나의 삶이 그러하듯
나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33쪽

행자님을 보노라면



무슨 수로 견딜려누.
누굴 믿고 살려 하누.


부처님 제자 된 인연으로
부처님 법法 너무도 크다지만.


깨달음의 끝은 멀다던데
그 긴 구도자의 험한 길 어찌 가려누.


참고 참고 또 참고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며
시집살이 큰 집 살림 이토록 고된데
고행은 또 어찌 감내하려구.


먼발치서
보고 있으면
왜 이리
눈물이 나누.


어휴, 난 왜 이렇게 눈물이 나누.- 34쪽

청송 아래서



만행길 한순간 단잠에 듭니다.
한적한 오솔길 창송 아래서
꿈에라도 보고픈 어머니.- 39쪽

어머니의 눈물



속가로는 내게 조카 되는 녀석이 1년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린 꽃망울 아련히도 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맞벌이 부부였던 형님과 형수님보다 더한
어머니의 애정으로 자랐습니다.
아이의 죽음은 생노병사의 순리라 체념했지만
정작 나의 눈물은 어머니의 가슴을
도려 내는 아픔 위에 흐릅니다.


밤을 새워 불경을 읽어 명복을 빌어 주고 싶지만
님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경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이 좌복 위에서 평생을 바쳐 기도하신
어머니의 염원이 눈에 맺히기 때문입니다.
목메인 함성으로 반야심경을 내려친 것도
내 슬픔보다 더 괴로우신 어머니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장난감과 옷가지, 조막만한 신발들을
보자기에 싸고 있는 나를 힘없이 때리고 있습니다.
문창살 창호지, 아이가 낸 손가락 구멍을 보며 울었습니다.
거울 속에 울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또 울고 있습니다.


화장터 아스팔트 위에
어머니의 눈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립니다.


- 43쪽

어떤 그리움



'보고 싶다'
진실로 그렇게 마음 깊이
가슴 싸 하게 느껴 본 적 있으신지요.
아마 없으시겠지요.
앞으로도 없으시겠지요.
하늘을 보고 허공을 보다가
누군가가 보고 싶어
그냥 굵은 눈물 방울이 땅바닥으로
뚝, 뚝 떨어져 본 적이 있으신지요.
없으시겠지요.
없으실 거예요.
언제까지나 없으시길 바래요.
그건 너무나, 너무나...-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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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세를 떠난다지만,
절에서도 속세와 같이 밥을 짓고 옷을 입고 잠을 자면서
삶을 이어요.
속세도 절집도 모두 같은 '마음닦는 터'가 되겠지요..

후애(厚愛) 2013-07-28 21:20   좋아요 0 | URL
'마음닦는 터' 네 맞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슬펐어요.
그냥 이상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