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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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산길을 걷는다



벼랑을 가로지르는 계곡 비탈길,
등 꺾여 놓여진 철판다리 건넌다
터벅터벅 걸음을 뗄 때마다
밑으로 텅텅 떨어져 찍히는 발자국
시린 물고기를 타고 떠내려간다



꽁꽁 언 바위에 기대어 쉬어가기도 하면서
가파른 불명산 등허리를 탄다
돌계단 밟고 총총 따라 오르던 물소리
통나무다리 지나 헤어진다
좁은 길 안쪽으로
바람을 쓸어내리던 싸리나무 가지들,
먼저 도착해
우화루 앞마당에 쌓인 눈을 쓸어놓았다



땅속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는 화암사 동종
아픈 밤이면 스스로 울기도 했다지? 구리연꽃잎에서
나온 가냘픈 용이 부신 눈을 비비고 있다
얼었던 손 녹이며 고드름 떨구는 극락전,
단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 보송보송하다
햇살 고운 툇마루에 앉은 나는
막 녹기 시작한 손과 발의 간지러움을 즐긴다
딱 그만큼,



얼었던 마음도 간지럽게 녹아내린다-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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