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시선 290
장철문 지음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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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느티나무 햇잎 스쳐 봄비 오시는 날
빗속에 배꽃 흐드러져 희게 부서지는 날
아내는 일 보러 가고
집 빈 날
글도 써지지 않고 책도 읽히지 않고
슬슬 졸리기까지 해서
일찍 집에 와 혼자 오줌을 누는데
거울 속에 자지가 참 이쁘장했다
며칠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운 값을 하느라고
움쳐 뛰려는 개구리와 같이
잎새 안쪽에 웅크린 개똥참외와 같이
멀뚱멀뚱한 놈이 참 실팍해 보였다
맑은 오줌발이 솟아나는 그 덩잇살을 바라보다가
그예 쿡,
웃고 말았는데
이걸 어디 좀 써먹을 데가 없을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나도 몰래.
또로로록 또루루룩
빈집을 참 크게도 울리며 포물선을 그리는 오줌발과
검붉게 분 내린 그놈이 비치는 거울을 건너다보다
쿡,
또 한번 터지고 말았는데
입속에 맴돌던 그 '자지'라는 말이 참 물큰하게 씹히는
것이었다.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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