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사는 김현경 여사를 찾았다.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시인의 아내는 시인의 유품과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세간의 평이야 어떻든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단 하루도 같은 느낌으로 산 날이 없었다고, 늘 어디선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고. 여사가 말한 새로운 바람이 이 시의 '아픔'이 아닐까. 봄도, 여자도, 능금꽃도 아픔을 통해 봄이 되고 여자가 되고 능금꽃이 된다. 모든 생명 활동이 그렇다. 그러니 사랑을 한다는 건 고통을 품는 가슴을 갖게 된다는 거다. 아픔을 느낄 줄 아는 통점을 퇴화시키지 않고 간단없이 연마한다는 거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미망인은 말했다. 그 사람은 인류를 위해 시를 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나는 '먼 곳으로부터 먼곳으로' 불어가는 바람소리에 한참이나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