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기담 - 상 - Navie
안민경 지음 / 신영미디어 / 2009년 11월
품절


그녀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괴롭게 몸을 뒤틀던 그녀의 움직임이 멎으며 잔뜩 오므라 들었던 다리가 스르르 이불 속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고통스러운 신음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듣는 이의 심장을 후벼파는 힘겨운 숨소리일망정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었는데, 죽은 연인의 손을 차마 놓치 못하고, 젊은 청년은 천천히 온기를 잃어 가는 그녀 앞에 주저앉아 오래도록 흐느꼈다.
실보다 가는 빗방울이 흩뿌려지는 아침에, 보드라운 햇빛의 촉복을 받으며 나는 그대를 신부로 맞을 터였다. 신방에 들어, 사실은 그대만큼이나 긴장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려 노력하면서 나는 수줍은 얼굴 위로 덮인 붉은 비단보를 걷어 내겠지. 그러면 익숙한 듯 황홀한 자태가 애써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떨어뜨렸으리라. 그리고. 그리고 손가락으로 문대면 미어질 듯 고운 두 볼은 아마 비단보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있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행복. 순탄하기만 했던 사랑은 이렇게 헤어지기 위함이었습니까. 보듬어 가면 한세상 살자. 아이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자. 이루지 못한 약속들이 아쉽고 안타까워 어찌 눈을 감았습니까.-97~98쪽

그리고 당신과 함께 그 많은 꿈들을 한꺼번에 잃은 나는 이제, 이제 어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밖으로 흘러넘치는 눈물의 몇 곱절이나 되는 눈물이 그의 몸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 지극한 비통함이 닿아 하늘은 종일토록 우레 소리를 내며 비를 뿌렸다.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할 것입니다.
내 남은 생, 그대를 생각하며 괴로워할 때마다 내 사랑은 점점 단단해질 것입니다. 애통해하는 눈물이 한 방울씩 더해질 때마다 우리가 공유했던 과거는 내 혼에 한 뼘만큼 더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이 손의 따뜻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끝내는 당신의 몸마저 한 줌 흙이 되어도, 나는 언제까지고 사랑할 것입니다. 내 손의 따뜻함이 완전히 사라지고 종당에는 나도 당신처럼 한 줌 흙이 될 때까지, 이 마음은 한(恨)이 되어 하늘을 울린다. 굵고 차가운 빗줄기가 땅이 패 나갈 정도로 거칠고 맹렬하게 쏟아졌다.
"......아아악!"
그리고 그 세찬 빗소리에 묻혀 버린 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있었다.-97~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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