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이 어느 날 미복차림으로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변복한 호위무사들과 함께 궁문 앞을 지나치려니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 궁궐 앞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지라 이에 궁금증을 느껴 병사에게 묻기를
"도대체 저 사람이 누군데 이 곳에 누워있단 말이오?"   
병사 또한 미복 차림의 숙종을 여느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글쎄, 저 사람이 임금님을 뵙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건 고사하고 임금님을 뵙기 전 까지는 죽어도 고향엘 안내려 간다고 바로 이 앞에다 돗자리를 깔고 며칠 째 농성 중인데 하도 말 같지가 않아서 대꾸도 안하고 있는 겁니다"
-보나마나 벼슬자리를 부탁하려고 이 곳에 온 모양인데 사람이 통도 크고 허황하지 어찌 판서 정승을 건너 뛰고 임금을 직접 배알한다고 한단 말인가 그 사람 배포 하나는 두둑하구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숙종이 은연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사람을 찬찬이 뜯어보니 그런대로 쓸만한 기색이 있는 듯하여
"여보시오. 무슨 연유로 임금님을 뵙자고 하는 거요? 잘하면 내가 다리를 놓아 당신의 뜻을 전해 보도록 힘 써 보겠소"
숙종의 이 말에 이 사람은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 임금을 뵈오면 벼슬자리 하나 청탁을 하려고 하는 거라오"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나름대로의 진실성에 마음이 끌려
"알았소. 내가 임금을 잘 아니 한 번 부탁해 보겠소. 그래 어떤 자리를 원하오?"
"배고픈 사람이 찬 밥 더운 밥 가리겠소? 시켜만 준다면 어떤 일인지 다 잘 할 수 있소"
나그네의 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숙종이  
"수문장을 시켜준다면 잘 해 낼 수 있겠소" 넌지시 의중을 떠보니
"그걸 말이라고 하오? 못할 게 뭐 있겠소?"  
이렇게 시작된 선문답이 여려 계층의 단계를 거친 후에
"그럼 판서도 할 수 있겠소?"   
"그거 역시 까짓 못할 게 뭐 있겠소"
"그럼 정승을 시켜도 할 수가 있겠소?"  
"정승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못할 리 없는 일이 아니겠소?"
거침없이 대답하는 나그네가 호감이 가기도 하여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묻기를
" 그럼 임금을 시켜줘도 할 수 있겠소?"  
숙종의 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직까지 누워서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사람이 어느 틈에 벌떡 일어나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번개보다도 빠르게 솥뚜껑만한 손으로 숙종의 뺨을 후려치면서
"이 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뭐? 임금을 시켜준다고? 에이, 못된 놈. 그럼 나보고 반역을 하란 말이냐?"
졸지에 뺨에 불이 나게 얻어맞은 숙종은 순간 얼떨떨하고 괘씸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생각을 돌려보니 더 없이 충성에 가득한 말인지라 혼쭐을 내려고 나그네에게 달려드는 호위무사들을 제지하면서
"그만 둬라. 짐은 저 사람의 충성심을 알게 되었으니 그걸로 족하다"  
하면서 그 사람에게 수문장을 제수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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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미난 이야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