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양 한국 무협 명작 컬렉션 2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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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늙고 주름진 손이다.
손가락은 젊은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예쁜군."
손의 주인이 중얼거렸다.
"좀 시들긴 했어도."
겁먹은 듯 여자의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손의 주인은 달래듯이 말했다.
"겁먹지 마라. 나는 그리 무서운 사람이 아니니. 긴히 구해야 할 물건이 있어서 이러는 것뿐이야. 물건만 구하면 즉시 널 풀어주마."
손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코와 입술을 지나 목을 건드리고 가슴에 닿았다. 여자는 거칠게 숨을 내뱉었지만 몸을 피하진 않았다.
손의 주인이 중얼거렸다.
"이 두둑한 건 뭐지?"
손가락이 여인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손아귀에는 한 움큼의 전표가 들려 있었다.
"오호? 굉장한 거금이군."
일견 수백 냥은 될 듯했다.
손이 가볍게 펼쳐졌다. 전표가 떨어져 바닥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난 돈에는 관심이 없지."
손의 주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핏물이 흘렀다.
"단지 그 책! 그 책만을 원할 뿐이야."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손의 주인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다.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됐지?"
"장강오살이 죽었습니다."-813~814쪽

손의 주인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멍청한 놈들. 다섯이서 하나를 못 당했다고?"
"...... 그리고 방희태의 시체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방희태가?"
손가락이 턱을 톡톡 두들겼다.
"그렇게 눈치 빠르고 싸움 잘하는 놈은 처음이었는데...... 결국 죽어 버렸군. 유상진이란 놈의 짓인가?"
"그게...... 처음에는 저희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만 조사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방희태의 머릿속에 삼시뇌충이 들어 있던 모양입니다. 그게 머릿속을 다 파먹었더군요."
"삼시뇌충? 그게 왜 그 녀석의 머리에 있었지?"
"그것까지는 저도......"
"어쨌든 유상진이란 놈,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 모양이군. 하긴...... 그러니까 지금껏 세가를 피해 다닐 수 있었겠지. 놈은 지금 어디 있나?"
"죄송합니다. 찾고 있으니 곧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상관없다. 녀석이 올 곳은 이곳뿐이니까. 돈도 여자도 이곳에 있는데 제 놈이 어딜 가겠나. 녀석이 오면 순순히 들여보내. 방희태를 없앤 실력을 직접 견식해 보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문이 닫히자 손은 다시 유희를 시작했다.
손의 주인은 야차왕이었고, 그의 맞은편에 선 여자는 유가영이었다.-814~815쪽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무렵 무한의 남문대로에 한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유상진이었다.
그는 문국루를 향해 걸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유가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날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어느새 가을이었다.
거리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푸르게 무성했던 잎들은 색이 변했다.
유상진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평화롭고 행복한 기분으로 문국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낙엽이 지고 있었다. -815~8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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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1-10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뭐야? 여기서 끝이라니... 무슨 완결이 이래?
야차왕과 유상진은 만났을까... 둘이 싸웠을까? 누가 이겼을까?
그럼 가영이는.. 이거 너무하다구~!! ㅜㅜ

실망한 김에 이 책을 방출해 버릴꺼나...ㅋㅋ

카스피 2011-01-11 22:57   좋아요 0 | URL
가끔보면 무협지중에 뜬금없는 것이 있더군요.아마 이 작품도 그런것 같네요^^

후애(厚愛) 2011-01-12 08:44   좋아요 0 | URL
작가한테 실망했습니다. 저렇게 끝나니.. 너무 속상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