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은 방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고, 두 행자가 배추밭에 씨를 뿌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그래서 두 행자는 배추씨가 든 그릇을 밭에 두고 추녀 끝에서 소나기를 피했던 것인데, 배추씨는 그만 빗물에 젖고 말았다. 비가 그치고 난 후, 씨를 뿌리려고 해도 씨들이 덩이가 져 뿌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지난번 <단감 사건>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이 행자가 꾀를 내었다.
「진 행자, 엉킨 씨들을 불에 말려 뿌리자」
「그래, 내가 풍로를 내올께」
온돌에 말리기에는 너무 젖어서 이 행자는 진 행자와 함께 불에 말리자고 꾀를 내었다. 그래서 이 행자는 풍로에 숯을 넣고, 진 행자는 숯에 불이 잘 붙도록 부채질을 했다. 그제야 성철은 좌선을 풀고 나와 두 행자의 행동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내가 똑똑한 행자를 두었다카이.>
그러니까 풍로불에 배추씨를 볶은 것은 세 사람의 합작품인 셈이었다. 출가를 해서는 씨를 볶으면 씨앗이 죽어버린다는 세속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산 것이다. 며칠 후였다. 밭에 뿌린 씨가 싹트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성철은 배추씨를 갖다준 마산에 사는 신도를 원망했다.-402~403쪽
소나기가 내리기 전에 뿌린 씨들은 파랗게 싹을 틔우고 있는데, 그후에 뿌린 씨는 감감무소식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산의 신도가 오자, 성철은 버럭 화를 내었다.
「니는 어떤 씨를 사왔길래 저렇게 배추가 나고 안 나고 그러노」
그러나 두 행자를 밖으로 불러내 자초지종 얘기를 들은 그 신도가 도리어 항의를 하자, 성철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밭에 볶은 배추씨를 뿌린 바보들이야」
오직 참선에만 관심이 있을 뿐 씨 뿌리는 농사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도인과 천진무구한 동자승의 실수담이었다.-4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