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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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항상 길위에 있다. 편평하고 딛기 좋은 길만 골라 걸을수도 없는 길들이 수없이 펼쳐져 있다.

또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위에는 강도 있다. 건널 배한척조차 보이지 않는 강은 현재와 과거를 가르고 삶과 죽음을

나누며 사랑과 이별을 가름짓기도 한다. 하여 강은 우리에게 태곳적부터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내몸 유전인자 어디엔가 각인된 그 강물소리가 가끔 영혼을 깨우는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기자인 주인공 문정수의 모습에서 저자의 잔영이 자꾸만 겹쳐진다.

냄새나는 양말속에 맹렬히 꿈틀거리는 무좀의 끈덕진 생명력은 지친 우리의 삶만큼이나 치열하다.

무작정 도시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허물어져 가는 영세민들의 삶과 비닐하우스안에서 기르던 개에게

물려죽은 소년의 영혼에게 나는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졌다. 그렇게라도 그 아이를 위한 위령제를 지내야만

따뜻하게 웅크리고 모른척 살아가는 우리들이 죄갚음을 할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생의 죄가 무지막지하여 한평생 폭탄을 껴안고 살아야 했던 뱀섬의 상처는 사랑할수 없고 미워할수도 없는

우리 식민의 역사이며 목숨을 걸고라도 건너야 할 또하나의 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와 돈으로 팔려온 이국의 여인이 섬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폭탄을 꺼내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

그뿐아니라 순식간에 물에 잠긴 폭탄은  평화로운 삶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재활용 보석으로

거듭나 새로운 희망이 되고 폭탄을 들이 붓던 사람들에게는 면죄부와 더불어 옹졸한 기부의 기쁨을 안겨주는 

서글픈 현실이 되는걸 보면 옛어른들이 '입찬 소리하지마라'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지금 더럽다고 침뱉을 용기가 점점 사라진다. 어찌 알겠는가 내일 나에게 절실한 식량이 될지도 모르는데..

 

공단에서 시위하고 목숨을 걸었던 노동자들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문을 닫고 철수한 텅빈 공장을 떠나 그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져 버렸을까.

목숨을 건 화재현장에서 많은 생명을 구하고 병을 얻은 소방대원에게 백화점 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훔친죄를 물을수 있을것인가. 더이상 폭탄도 캐먹을수 없는 예전의 선각자에게 콩팥을 얻는 댓가가 된

그 돈은 어차피 없어도 삶에 아무 지장이 없을 사람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묻혀진 사건도 캐내서 신문에 훈장을 달아야 하는 기자로서 묻어야 할일이 많아진다는건

아직 붓끝이 시퍼런 열혈후배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난 그의 이런 직무유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비수처럼 날서야 할글은  비굴하게 깍이고

비루먹어 볼품없었을 권력의 흔적들이 모피를 두른 비만의 글이 되는 비겁함을 더이상은 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의 눈치없이 온전하게 사람들을 파고드는 적당히 따뜻한 글들을 쓸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책을 읽을수 있는 행운을 얻은것은 작가의 바로 이런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므로..

 

강으로 뛰어드는 백수광부를 보고 통곡하지도 못하고 따라 죽지도 못한 사람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사랑이라고 이름짓지 못하고 남은 기억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강은 자꾸 건너라고..

아님 흘려 보내라고 자꾸 웅웅거리는데  우리는 멈칫거리고 강물만 바라보고 서있다.

뜯지도 못할 공후만 만지작 거리면서 결국 죽어야 저강을 건널것임을 막연하게 예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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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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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짚어 글을 짓는 다는것은  분명 있었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안개낀 산속을 헤메는

절망감과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학자들의 지탄을 견뎌야 하는 모험을 감내해야 한다.

가뜩이나 김정호의 발자취는 더욱 미미하여 저자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김정호의 이야기를 쓸수 밖에 없었던 절박함과 애정이 또한 눈물겹다.

아마 글을 짓는 내내 작가 박범신도 조선팔도를 헤메고 짚신을 고쳐신기를 반복하였을것이며

몸뚱이 하나 누일곳 없는 막막함과 반역의 오명에 분을 삭이지 못했을 것이다.

 

중인의 신분으로 만리재 근처 어디엔가 살았다는 흔적과 몇몇 선비들의 글속에 잠깐씩 언급되어진

것만으로 이렇게 절절한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노력과 열정이 그저 감탄스러울뿐이다.

 

왜 세상의 모든 위인들은 고난과 핍박을 딛고 일어설수 밖에 없는 것인가.

천재적인 대부분의 예술가의 삶처럼 늘 불행과 가깝고 어깨시린 목숨값을 지불해야 하는가.

하긴 태어난 나라와 시대가 비루먹고 남루한데 그 값을 제대로 쳐줄 안목인들 있었겠는가..하고

혀를 차지만 평생을 길위에서 보냈을 김정호의 삶이 너무나 가엽다.

 

하늘위에서는 위성이 호시탐탐하고 몇걸음의 거리에도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안내를 누리고 있는

요즘에야 지도의 고마움을 짐작이나 하겠나마는 고작 큰산위에 올라서야 지형이 삼삼하게 보이고

길도 없고 교통편도 없을 그 시절에 오로지 자신의 발과 눈..손만을 가지고 그려나갔을 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댓가없이 평생 그일을 해야만 했던 그의 운명이 너무 혹독하다 싶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이 상석에 자리잡고 여린 백성들을 착취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에 그래도 몇사람쯤은

비바람 몰아치고 산짐승 우글거리는 큰산위에서 깃발을 붙들고 있었나보다. 

독도를 그려넣지 못한 가난함과 궁핍함이 서럽고 전생의 업이었던가 다리저는 자식으로 평생 역마살낀

아비곁을 지켰을 순실이의 터지고 두꺼워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시리다.

 

종이위에 선 그리고 산 그리면서 그는 행복했을까?

저마다 케케묵은 지도를 꺼내놓고 내땅이네 네땅이네를 논하는 시대가 되고보니 김정호의 그 우둔함이

백성에게 그다지 해준일이 없는 조선의 역사속에서 나중에라도 빛을 발하였으니 어디에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를 그의 주검앞에 조금은 죄를 덜은 느낌이다.

 

삼장을 높게 달고 곡을 해야만 했던 그의 한(恨)이 하늘위에서는 풀렸을것인가.

아무도 붙들어 주지 못했던 그의 외로움이 그곳에서는 풀렸을것인가.

이제는 길위에서 내려와 혜련스님과 순실과 따뜻한 된장국 마주놓고 앉아 이제는 따순 불때고

시린 어깨를 녹이고 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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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로 돌아오다 - <벼랑에서 살다> 조은의 아주 특별한 도착
조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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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인의 시를 본적이 없다. 시를 해석할만한 안목이 부족도 하거니와 가끔은 짧은 시가 주는 무게에

눌리는 기분이 들어서 슬며시 피해 돌아 앉아 있곤 했었기 때문일것이다.

확실히 글이라는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어도 그사람을 확실히 느낄수 있는 향이 있다.

나와는 비슷한 시간을 같이 걸어왔음직한 연배인데다 그녀가 오지랖 넓게 쏘다닌곳들도 비교적 낯설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다만 그녀의 외로움이랄까...제목에서 풍겨오는 막연한 쓸쓸함 때문이었을까

이책을 읽는내내 참 마음이 외로워졌다. 하긴 배우들도 작품이 끝날때까지 배역과 똑같은 감정에 몰입되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고 하더니...흥미위주의 책에서는 느낄수 없는 깊은 성찰과 자꾸 그녀처럼 나를 들여다 보게

되어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아왔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자신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를 않을까.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을 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일까. 이글에 소개된 고갱과 고흐도 그러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범인의 눈으로 보면 때로는 그들의 이런 고통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남의 전통적인 곳에서 성장한 배경으로만 보아도 특히 여자가 도드라진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웠을터인데..

참 정갈하게 맑게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너무 맑아서 오히려 발을 담그기가 어려운 계곡물처럼

그 맑음이 도리어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그녀의 아버지처럼 사실 홀로 살아감을 즐기는것인지도 모르겠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글사이 사이에는 그녀가 자주 잊어버리고 가지고 가지 못했던

카메라로 찍었을법한 사진들도 도시적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절제가 느껴진다.

 

적당히 섞이지 못하고 저마치 떨어져 있는 소심함도 엿보이고 때로는 툭툭털고 차도 없이 긴 여행을 나서는걸

보면 한편으론 대단하기도 하다. 자주 지나치는 사직동 골목 어디에선가 강아지 또또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와

마주친적도 있었을지 모를일이다. 나도 그녀처럼  강남의 잠들지 못하는 번쩍거림보다 느리고 지쳤지만 정겨운

골목이 더 편하다. 잘 짜여진 여행코스와 불편하지 않을 숙소가 기다리는 떠들썩한 여행보다 가끔 그녀처럼

혹시 이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정신없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불쑥 벗어나 호젓하게 즐기고 싶어진다.

 

유독 그녀의 주변사람들은 그녀와 닮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가슴아픈 이별도 많이 겪은 모양이다.

하긴 이나이즈음이면 반가운 소식보다 안타깝고 가슴아픈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오긴 한다지만 잘 떨쳐내지 못하는

여린 심성의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지금 이곳 내가 그녀를 만난 이곳도 결국은 잠깐 다니러 온곳이 아니겠는가 억겁의 시간속에서 잠시 수레에서

내려 들러가는 이곳에서 아무리 많이 살았던 동네에 집이라 한들 어찌 낯설지가 않을것인가.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빗물이 새서 천막을 얹은 지붕을 누군가 걷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결코 그집에서 옮겨앉지

못할것 같다. 그곳보다 더 낯선곳으로 내쳐진다면 이제 더 길지 않을 생이 너무나 처연하지 않겠는가.

유독 바다그림이 많았던걸 보면 그녀도 나처럼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나보다.

눈내리는 겨울바다에 평일날 혼자 무심히 걷고 있는 여인이 있다면 한번쯤 눈여겨 볼일이다. 그녀가 애견 또또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나와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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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청소년들의 부자가 되는 공부
마크 빅터 한센 지음, 장인선 옮김 / 명진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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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희망)이란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등대로서 가슴에 품을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물며 아직 여물지 못한 어린나이에 꿈을 이룬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더구나 꿈이 시작되고 준비된 시기가 4세 5세인 경우도 있었다.
막연한 꿈이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 성공을 일군 그들이 똑같이 말하는것은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라니 도대체 그들이 도달하려는 곳이 어디인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그네들보다 배이상 살아온 내가 저들이 꿈꾸고 도전하고 이루고자 했던
그나이 즈음에 과연 무얼하고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부모가 챙겨주는 양식을 먹고 학교에 다니고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내가 이루어
낼것이 없다는 안일한 생각에 막연한 꿈만 그리는 철부지였다는 기억밖에 없으니 말이다.
성공의 댓가가 돈만으로 계산되어서는 안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리틀CEO는 이미 경제적인
자립과 돈으로 환산될수 없는 가치들을 이루고 더구나 소외된 이웃들과 자기것을 나누는
성숙함과 사랑을 가졌으니 결코 그들을 어리다고 표현할수 없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정도로 지나칠수 있었던 작은
희망의 씨앗을 물주고 키워준 부모와 멘토가 있었다는 점이다.
내아이는 왜 이들처럼 꿈꾸지 않는가...혹은 능력이 없는가 라고 말하기 전에 과연 내아이의
작은 불꽃이라도 발견할만한 자질이 내게 있는지 돌아볼일이다.

실제로 내아이도 이들보다 더 괜찮은 능력과 꿈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다 보게된다.
하지만 이들의 부모는 아이가 선택한 길에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신뢰를 주고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 놀랍게도 스스로 자본을 마련하고 기획하고 실천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불편하지 않게 부족하지 않게 무조건적으로 다 내주는 한국의 부모입장에서 보면 과연
아이를 성공시킬수 있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케 하는 것이다.

또하나 스스로 멘토를 정하고 자신의 길을 이끄는 등불로 삼는 지혜를 갖고 있기도 하다.
만나본적이 없는 대상이 멘토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기 삶의 모델로 정하고 가까워
지려고 노력하는 지혜를 어디서 배운것일까.
학원 10개를 다녀도 배울수 없는 이 성공의 열쇠를 어디서 구한 것일까.
안그런척 하고 싶지만 이들의 부모가 부러워 지는건 어쩔수가 없다.
일찌감치 자기의 능력을 알아내어 지름길을 달려간 아이들에게 단지 하나 아쉬운건
아이답게 살 시간이 부족했다는것 뿐이다.

이세상사람들에게 최고의 맛있는 쿠키를 맛보여주고 싶었던 소녀에서
잘못된 파마로 손상된 자신의 머리결을 회복시키기 위해 헤어팩을 개발한 소녀의
작은 꿈의 씨앗은 결코 거창하거나 멀리 있지 않았다.
파랑새가 멀리 있지 않았던것처럼 지금 내아이의 파랑새도 내아이의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그 파랑새를 아이가 잘 찾아내기를 소망해본다.
그리고 이렇게 멋지게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리틀 CEO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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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쫓는 아이 - 열네 살 소년이 우연한 곳에서 자신의 꿈과 조우하는 이야기
케이트 톰프슨 지음, 나선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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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인 '완득이'와 '리버보이'를 능가하는 작품이란 소개에 약간은 과장이 아닐까 싶었다.

이책을 읽는내내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던것은 나에게도 주인공 '바비'와 같은

열네살의 아들녀석이 있기때문이다. 일생을 살면서 가장 폭발할것 같은 나이는 대략 이즈음인모양이다.

우리 아이도 또하나의 '바비'가 분명하니 말이다. 질풍노도라고 표현되는 말..그대로 도무지 어느곳에서

와서 어디로 휘몰아칠지 모르는 거대한 태풍이 분명한것은 나라와 인종을 구분할수 없는 인간모두의

숙제인 모양이다.

 

그나마 정말 다행한 것은 어둡지만 빛이 사라지지 않은것 처럼 보이는 더블린을 떠나 자연과 요정이

노니는 시골로 떠난것이다. 도무지 살아질거 같지 않은 촌스런 그곳에서 바비는 치유의 희망을 찾는다.

열네살에 미혼모가 된다는것은 아무리 의식이 선진화된 나라라 하더라도 환영할일은 아닐것이다.

특히 아일랜드는 전통과 보수적인 성향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하니 아무리 사회보장이 잘된 나라라

하더라도 그들의 미래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줄수는 없었을것이다.

가정이라는건 가족간에 신뢰와 건전한 관념과 경제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비의 엄마가 사회보장에 의존하고 자식을 위해 일을 하지 않고 방황하는 장면들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녀역시 바비의 말처럼 아직 한번도 제대로 자기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불쌍하고 여린 미혼모임에 불과했다.

그걸 깨닫기까지 바비는 제대로 엄마를 바라보지 못하고 그녀의 무조건적인 사랑마저 역겹게 느낀다.

불과 열네살의 소년이 욕설과 폭력과 마약과 술과 도둑질에 절어서 어느길로 가야할지 모른채 방황한다.

주변에 정상적인 삶을 살고 이끌어주는 사람들도 없다. 철없는 20대의 엄마와 아빠가 다른 네살짜리 동생이

있는 소년이 할수 있는일들이 있기는 했었을까.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밤과 때로는 빗소리와 태풍의 소리를 들을수 있었던 곳에서 바비는 자신의 갈길을 일러주는

가족들을 만나게된다. 평범하지만 완고하고 안정된 콜리의 가족들을 만날수 있게 해준것은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운명이었을까. 분명 바비는 성실하고 영민한 능력을 타고 났었을것이다. 다만 어느 누구도 그 능력을 쓸수 있도록

길을 가르쳐 주지 못했던것뿐..혹시 우리도 말썽장이 아이들의 능력을 이끌어내주지 못하고 있는건 아닐까.

바비가 말썽을 부리고 어둠의 길로 빠져갈수록..가족이라고 표현되는 인물들이 한심한 삶을 살아가는걸 볼수록..

나는 분노에 빠졌다. 아무도 바비의 삶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걸 보면서 아니 자신의 삶조차 휘청거리는걸

보면서 도무지 빛이 보이지 않을것 같아 분노가 치밀었다.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랜드로바는 바로 '희망'의 또다른 상징인것 같다.

뼈대는 멀쩡하지만 엔진이며 부속들을 다 챙겨 조립을 해야만 거리를 달릴수 있는것 처럼...

바비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견케해준 랜드로바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비로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남의 것을 빼앗고 도둑질한돈이 아닌 땀흘려 번돈 29.99유로짜리 '토크렌치'는 그의 방황을 멈추게 하고 빛으로

향하게 하는 등불이 된다.

10년후 다시 찾은 그곳에서 동생과 추억을 말하는 장면에서는 자꾸 눈두덩이가 뜨거워졌다.

결국 해냈구나...너를 치유한 그곳에서 과거의 너를 일으켜 세웠구나..

상처투성이의 엄마도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 졌기를 바랬다.

그리고 바비처럼 열네살의 태풍속에 갇혀있는 내아이에게 자꾸 '토크렌치'를 쥐어주고 싶은 조바심이 일었다.

정말 아일랜드의 그 요정이 살았을것만 같은 시골로 가면 내아이도 치유될수 있을지 지도책을 꺼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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