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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로 돌아오다 - <벼랑에서 살다> 조은의 아주 특별한 도착
조은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시인의 시를 본적이 없다. 시를 해석할만한 안목이 부족도 하거니와 가끔은 짧은 시가 주는 무게에
눌리는 기분이 들어서 슬며시 피해 돌아 앉아 있곤 했었기 때문일것이다.
확실히 글이라는건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어도 그사람을 확실히 느낄수 있는 향이 있다.
나와는 비슷한 시간을 같이 걸어왔음직한 연배인데다 그녀가 오지랖 넓게 쏘다닌곳들도 비교적 낯설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다만 그녀의 외로움이랄까...제목에서 풍겨오는 막연한 쓸쓸함 때문이었을까
이책을 읽는내내 참 마음이 외로워졌다. 하긴 배우들도 작품이 끝날때까지 배역과 똑같은 감정에 몰입되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고 하더니...흥미위주의 책에서는 느낄수 없는 깊은 성찰과 자꾸 그녀처럼 나를 들여다 보게
되어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아왔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자신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를 않을까.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을 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일까. 이글에 소개된 고갱과 고흐도 그러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범인의 눈으로 보면 때로는 그들의 이런 고통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남의 전통적인 곳에서 성장한 배경으로만 보아도 특히 여자가 도드라진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웠을터인데..
참 정갈하게 맑게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너무 맑아서 오히려 발을 담그기가 어려운 계곡물처럼
그 맑음이 도리어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그녀의 아버지처럼 사실 홀로 살아감을 즐기는것인지도 모르겠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글사이 사이에는 그녀가 자주 잊어버리고 가지고 가지 못했던
카메라로 찍었을법한 사진들도 도시적이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절제가 느껴진다.
적당히 섞이지 못하고 저마치 떨어져 있는 소심함도 엿보이고 때로는 툭툭털고 차도 없이 긴 여행을 나서는걸
보면 한편으론 대단하기도 하다. 자주 지나치는 사직동 골목 어디에선가 강아지 또또를 끌어안고 있는 그녀와
마주친적도 있었을지 모를일이다. 나도 그녀처럼 강남의 잠들지 못하는 번쩍거림보다 느리고 지쳤지만 정겨운
골목이 더 편하다. 잘 짜여진 여행코스와 불편하지 않을 숙소가 기다리는 떠들썩한 여행보다 가끔 그녀처럼
혹시 이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아닐까 정신없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불쑥 벗어나 호젓하게 즐기고 싶어진다.
유독 그녀의 주변사람들은 그녀와 닮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가슴아픈 이별도 많이 겪은 모양이다.
하긴 이나이즈음이면 반가운 소식보다 안타깝고 가슴아픈 소식이 더 많이 들려오긴 한다지만 잘 떨쳐내지 못하는
여린 심성의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싶었다.
지금 이곳 내가 그녀를 만난 이곳도 결국은 잠깐 다니러 온곳이 아니겠는가 억겁의 시간속에서 잠시 수레에서
내려 들러가는 이곳에서 아무리 많이 살았던 동네에 집이라 한들 어찌 낯설지가 않을것인가.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빗물이 새서 천막을 얹은 지붕을 누군가 걷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결코 그집에서 옮겨앉지
못할것 같다. 그곳보다 더 낯선곳으로 내쳐진다면 이제 더 길지 않을 생이 너무나 처연하지 않겠는가.
유독 바다그림이 많았던걸 보면 그녀도 나처럼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나보다.
눈내리는 겨울바다에 평일날 혼자 무심히 걷고 있는 여인이 있다면 한번쯤 눈여겨 볼일이다. 그녀가 애견 또또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나와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