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이 리뷰를 읽는 독자들중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제목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서점에서 책을 만났을 때 아무정보없이 책을 집어드는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거나 제목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내 인생 최고의 책'은 무엇일지 나에게 되물어보았다.

단 한권만을 고른다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얼른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를 구원한 책, 혹은 내 인생의 수많은 길중에 그 길을 선택하게 해준 책.

참 꼽기가 어렵다. '제인에어'도 좋았고 '폭풍의 언덕'도 좋았고 여기 이 책의 주인공 에이바처럼

어린시절 충격적인 사건후에 겪었던 아픔을 치유해준 그 책처럼 나를 잠시라도 치유의 길로

인도해준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이란 작품도 좋았다.


 


에이바는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수다. 얼마전 남편인 짐은 뜨개 크라피티라는 아주 낯선 예술을 하는 작가에게 빠져 그녀를 떠나버렸다. 아들은 윌은 아프리카로 고릴라를 돌보기위해 떠났고 딸인 매기는 전공인 미술사공부를 위해 피렌체로 떠나 에이바는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다.

그런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소망을 이룬다. 절친인 도서관 사서 케이트가 주관하는 북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그 북클럽은 10명의 소수인원만 허용하고 있었고 결원이 생기는 경우가 너무 드물었다.  책을 좋아했던 에이바는 결국 북클럽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의 주제를 정하는 12월의 모임에서 '내 인생 최고의 책'을 정하고 서로 토론하기로 한다.  '오만과 편견',''위대한 개츠비', '제5도살장', '안나카레니나'등 누구나 명작으로 꼽는 책들이 정해지고 에이바는 아무도 알지못하는 생소한 작가의 책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라는 책을 말한다.


 


'로절린드 아든'이라는 작가는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 되어버린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라는 작품만을 남겼고 그녀에 대한 정보도 검색되지 않고 심지어 책을 출판한 출판사마저 없어졌음에도 에이바는 작가인 로절린드 아든이 직접 이 북클럽에 와서 간담회까지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연한 거짓말처럼 보였던 이 말은 사실 그녀에게 운명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

로절린드 아든을 찾는 긴 여정을 끝날무렵.


 

 

 어린시절 에이바의 동생이었던 릴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던 그 날, 여러명의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새 삶을 계획하던 두 연인, 프라이팬에 달라붙은 밀가루 반죽을 긁어내던 여인,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책을 읽던 소녀.

그냥 우연한 사고였지만 운명은 그들을 불행으로 이끌었다. 새 삶을 계획하던 두 연인은 헤어졌고 밀가루반죽을 긁어내던 여인은 어디론가 숨어버렸으며 책을 읽던 소녀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채 에이바라는 이름으로 늙어가고 있었다.



에이바의 딸 매기가 피렌체에서 대학을 그만두고 파리로 향해 약물로 연명하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 것은 에이바와 짐의 이별 훨씬 전부터의 문제였다. 매기가 왜 약물과 섹스에 취해 인생을 망가뜨기게 되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그녀가 굳이 파리로 오게된 것은 운명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곳에 매기를 치유해줄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때로 선택처럼 보이는 길을 걷다가 뒤늦게 운명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 날 그 사건이후 불행해졌던 모든 사람들이 파리로 몰려든다. 왜 자신들이 그곳으로 이끌어졌는지는 후에 알게되지만.


'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 북클럽에 들어와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에이바는 말했었다.

'책이 사람의 운명도 바꾼다'라고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은 말할 것이다.

한 때 불꽃처럼 타올랐던 사랑도 꺼져버리고 후회라는 앙금만 남은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내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꼽을만한 책 한권 정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억울한 인생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책으로 만나고 책으로 치유받고 책으로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행복했다.  그리고 작가를 찾아 퍼즐을 맞춰나가는 미스터리한 시간들도 잠시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이 책이 혹시 먼 훗날 '내 인생 최고의 책'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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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적시는 가시밭길 - 시리지만 참 따스한 우리이웃 이야기
한효신 지음 / 롱테일 오딧세이(Longtail Odyssey)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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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뭐든 다 아는 것 같이 오만하지만 사실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는 걸 깨닫게

해준 책이다. 우리는 세상에 나오면서 누군가의 자식이고 조카이고 이웃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부모가 되고 조부모가 되고 친구가 되는 인연이 생기게 된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지 못했다는 불만때문에 지금의 삶이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던

나로서는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사실 윤회의 굴레에 선 영혼이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났다는 주장에 다소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내 기억속에 그런 선택이 있지는 않지만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으로 이 생에서 만난 내 부모에게 최선을 다했는가 생각해본다.

가슴 뭉클한 사연에 담긴 부모님들의 무한한 사랑과 아픔을 읽으면서 자꾸 거울을 보는 심정이 되었다.


 


수술만 하면 명을 더 이을수도 있었던 어머니가 홀로 남을 딸자식을 위해 자신의 수술비를 유산으로 남기고 죽어가는 사연이라든지 눈 하나가 없는 어머니를 평생 증오했던 아들이 성공하여 어머니와 절연했지만 우연히 어린시절 교통사고로 눈을 잃었던 자신에게 눈을 주었던 사연을 알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을 우리는 저울로 재고 불만으로 무시하고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남은 사람들의 그리움과 후회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이 절로 다가온다.


 

 

이런 사연들을 열거하면서 저자는 결국 우리 인간이 인생을 얼마나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주변을 살펴야 하는지 지혜로운 고서들의 명언을 통해 전해준다.

동서고금 변하지 않는 진리는 분명히 있다. 흔히 옛말 그른 거 없다는 게 바로 그런 진리가 아닌가.

그런 진리의 말씀을 새기고 열심히 사는 유재석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참 감동스럽다.


 


연예인으로서 대상을 여러번 수상할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그가 개그맨에 입문할 당시 참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함으로써 지탄받았지만 10여 년의 무명의 시간을 견디면서 간절히 기도했던 약속을 그대로 지키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존경스러웠다.

'벼가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을 실천하면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 넘치는 삶을 살면서 어찌 우쭐하면서 누리고 싶지 않겠는가.

좌절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어깨를 두들겨주는 모습이며 알려지지도 않는 기부금을 그렇게 많이 내면서도 여전히 마음부자인 그가 너무 부럽고 기특하기만 하다.


우리는 좋은 이웃을 만나면 행복하다. 좋은 기운을 나누어서 행복하고 그런 사람과 한 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세상이 각박하지만 가끔 이런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같은 사람들이 있어 살만하다고 여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재석이란 인물은 지금 우리 시대를 이끌어주는 참인물이 아닐까 싶다.


시리지만 참 따스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에 유재석의 철학까지 곁들여 잠시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던 따뜻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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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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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들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굳이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작가들이 있다.

오래전 여물기 전 나의 모습은 모두 흑백에 담겨있는데 뭐랄까 잔잔한 슬픔이 고인것도 같고

찬란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깊게 느껴지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제목으로만 보면 그동안 고였던 슬픔들이 어느 한 날 드디어 둑이 터지듯이 오열하는 그런 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흑백이 주는 일러스트의 아름다움과 진심이 고인 인생이야기여서

놀라웠다.


 


'실컷 울어도 되는 밤'이란 뜻은 내가 이 책과 마주했을 때 그동안 감춰두었던 슬픔까지도 온전히

쏟아낼 정도로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전세계 팔로워만 해도 60만이 넘는다는 일러스트레이트 헨 킴의 그림을 만난 것만 해도 큰 행운이었다.

간결하지만 절대 간단하지 않은 것들을 수두룩하게 품은 그의 일러스트들은  내 눈길을 오랫동안 붙들어둔다.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린다고 이런 작품이 나올 수는 없다. 사랑이란게 참 행복한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을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가시투성이의 선인장을 껴안고 있는 이 그림에서 '완전'한 결합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너와 가까워질수록 더 힘들어'.

사랑할 수록 더 고독해지고 갈망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이 왜 없었을까. 그대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렇게 외롭다..고 누군가는 말했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즐겁지 않아지는 시절이 온다. 세월의 덕지가 묻어있는 얼굴도 그렇고 아무리 좋은 화장품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더 짙어지기 때문에 늙어간다는 것은 참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날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주랴.

내 집 개도 구박하면 밖에 나가서도 따돌림을 당한다는데 주름투성이에 못난 나일지라도 좀 아껴주자. 나라도.

일러스트에 나온 저 여인의 몸매정도라면 내가 날 업고 다닐 정도로 마구 사랑해줄텐데...쯥.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이 컷 하나로 환호하지 않았을까. 얼핏 찻잔속에 차의 티백을 넣은 건가 싶었는데 책이라니...참 천재가 아닌가 싶다. 이 작가.

사실 장문의 소설보다 단편이 더 어렵고 시가 더 어렵다고 한다. 언어를 함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던데 단 한 줄의 문장에 그 보다 더한 세상을 담은 그림 한 컷으로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그래서 쉽게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다. 그리고 한참동안 문장을 읽어보고 마음에게 수많은 말을 건네게 된다.  너도 그랬었지.


크게 네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아트에세이를 읽고 나면 정말 실컷 울고난 것 같은 후련함이 느껴질 것이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어둠들이 밤과 함께 저 멀리 떠나고 새로운 새벽을 맞는 것같은 개운함이 있다.

이렇게 간결하지만 깊은 헨 킴의 작품이 더 궁금하다면 한국에서도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니 꼭 한번 가보시길.


가장 역량있는 젊은 작가를 선정하는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 프로젝트에 개인전시((7/29~10/1)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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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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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쯤 실연당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는데 나는 실연당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마음을 나누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한번쯤이라도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평탄한 기억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흘리는 눈물조차 밍밍해서 인생의 깊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으신다면

'사랑은 태동되는 순간 이미 식을 준비가 된 스프와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막 끓여진 뜨거운 스프는 좋은 향과 감칠 맛을 담고 있지만 식어버리면 그 좋던 향과 맛은 다 사라지고 부드러웠던 감촉은 뚝뚝 끊어져버리는 처참한 몰골만 남겨지게 된다.

사랑이란게 그렇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눈물을 반찬 삼아 조찬을 하는 카페가 있다.


 


따뜻한 차와 유기농으로 차려진 식사, 그리고 영화제까지 준비된 그런 모임이 있다면 당신은 올 준비가 되었는가.

물론 한때는 찬란하게 빛나던 기억을 담은 실연의 훈장같은 물건을 가져오는 미션이 있다.

아주 오래전 불길한 그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그가 홍콩 어느 백화점에서 한참을 골랐다는 빨간색의 요염한 소니팩을 들고 만나러 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임을 난 알았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린 나이였는데 그의 기억이 묻어있는 그 팩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삶이 끝나버릴 것 같은 막막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그 순간에 말이다.

암튼 나는 그가 담담히 실연을 고하는 순간 그 팩을 이제 겨우 얼음을 뚫고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그의 신발옆에 조용히 내려놓고 등을 돌려 산길을 내려왔다. 그가 지금의 내 뒷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뭐 그런 생각이 들었고 한참을 걸어 내려와 택시를 타고...잠시 기억을 잃었던 그 시간.

참 실연이란게, 아니 실연당한 그 순간이라는게 추하지 않기가 어렵다.

보여지는 영상뿐아니라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을 주섬주섬 꿰어 맞춰 그 순간을 빠져나와야 하는 정신적인 쇼크는 누구라도 멋지게 보여질 수가 없다.

그래서 아주 먼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시대에는 그런 추함을 달래주고 치유해줄 카페가 등장한 모양이다.


 



'슬픔이여 안녕'을 썼던 프랑스와즈 사강을 너무도 좋아해서 딸의 이름조차 '사강'이라고 붙였다는 남자는 한때는 열렬했겠지만 시시하게 막을 내리고 프랑스로 떠나 백인여자와 결혼하여 배다른 동생을 만들어줬다.

뭐든 완벽하기를 바랬던 사강의 엄마는 자신의 슬픈 결혼의 역사가 빠져나가자 그 아픔을 딸에게 고스란히 넘겨준다. 자신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떠난 것이 아닐까...하는 실패한 사랑의 당사자들은 대략 이런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 물론 자신이 실연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남자들이 몇 있었다. 다만 한 남자에게만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남자에게 왜 사강은 끌렸던 것일까.

그것도 이미 아내가 있는 남자를.


 


그리고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외조부모밑에서 자란 지훈은 자폐증을 가진 형 때문에 늘 깊은 우수가 깃든 남자다. 연 이어 외조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형을 돌보게 된 지훈에게 고등학교시절부터의 친구 현정은 유일한 여자이다. 교사이지만 자유분망한 현정. 그녀에게는 딸의 삶마저 좌지우지하고 싶어하는 괴물같은 엄마가 있다. 현정이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지훈에게 이별을 고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이미 현정이라는 세상에 최적화되어 살아가던 지훈에게 실연은 교통벌칙금 통지서 8장으로 날아온다.

그녀를 잃고 폭발할 것 같은 자신을 식히기 위해 정신없이 운전을 했다. 결국 자신을 잘 나가는 강사로 전국을 다니게 했던 애마는 팔수 밖에 없고 우연히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에 참석해 현정에게 받았던 로모카메라를 실연박스에 집어 넣는 것으로 그녀와의 시간을 마감했다.



 


사실 미도라는 여자가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이라는 특이한 모임을 만든 것은

순전히 사업적인 의도였었다. 그런 사람들끼리 다시 인연을 만들어주기 위한 결혼 정보회사의 간악한 눈속임같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다 보면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 지는건 더 쉬울지도 모른다는 미도의 의도가 멋지게 성공한다.


'실연'이라는 사건으로 묘하게 얽히게 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고 극복해과는 이야기가 참 시리다. 어쨌든 실연이라는 아픔을 극복하려면 이런 모임이라도 만들어 서로의 상처를 보여줘야 빨리 아물게 된다. 만나야 다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미도의 말에 한표!


실연이 무슨 전과도 아니고 그저 한바탕 지나가는 태풍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나이가 들어보니 실연조차 아름다운 추억이 되더라. 그 때 내가 실연이라는 태풍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미도같은 여자가 조찬모임에 초대했다면 좀 더 빨리 그 태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 백표!


그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봉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이지 말고 일곱지 조찬모임에 참석해서 드르륵 박음질 하고 나오면 좀더 빨리 아물게 되겠지. 마침표가 있어야 끝나는 거니까.

읽는 내내 마음을 울리는 멋진 대사가 많아서 참 행복했다. 다만 지훈과 사강의 재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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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
리즈 무어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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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였다는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멋있는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더구나 별로 소실이 없었다는 과학을 이토록 리얼하게 펼쳐놓을 수 있다니 그녀의 겸손을

믿지 못하겠다.

1980년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실 1920년로 거슬러 올라가야 퍼즐이 완성된다.

어쨋든 이 소설의 주인공 에이더는 소설이 시작된 80년에 열 두살 이었다.

아버지인 데이비드는 당시 개발되기 시작된 컴퓨터와 같은 현대의 첨단기술의 초기단계를 연구하는  대학 부속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에이더의 출생은 아주 특이하게도 대리모를 통해 이루어졌으면 에이더에게 자궁을 빌려주기만 했던 여자의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데이비드는 결혼이라는 형식은 거부했지만 아이는 갖고 싶었다.  그래서 에이더가 이 세상에 나왔다.

흔히 천재들이 그렇듯 뛰어난 과학적 재능을 지닌 데이비드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에이더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시킨다.


 


에이더는 걸음마를 연구소에서 배웠을 정도로 연구소의 가장 나이어린 멤버였다.

데이비드의 수하에 가장 우수한 연구원인 리스턴은 아이 넷을 둔 주부였고 이혼했지만 최고의 재능을 지난 연구원으로 에이더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지켜본 인물이다.

해마다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연구소로 들어왔고 데이비는 자신의 왕국의 대장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복병이 찾아들기 전까지는.

당시 데이비드는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컴퓨터 '엘릭서'를 창조했고 소통가능한 언어를 계속 업데이트중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에게는 '엘릭서'를 완성할만한 시간이 부족했다.

점차 기억이 사라지고 결국 요양원까지 갈 수 밖에 없었던 데이비드를 지켜봐야 하는 에이더는 심한 고립감과 위기를 느낀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에이더는 자신의 사회성이 현격하게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에이더의 세계는 연구소와 집, 그리고 데이비드와 리스턴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입원하고 난 후 에이더는 서너 집 떨어져 있는 리스턴의 집으로 옮긴다.

누군가 에이더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으므로. 리스턴은 에이더에게 데이비드를 대체할 가장 훌륭한 보호자였다.

데이비드의 세상이 점차 닫히고 리스턴은 에이더를 대신해 주변을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데이비드의 정체는 놀랍기만 하다.

아니 사실 데이비드라는 인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에이더는 데이비드가 아직 정신이 온전했을 때 남긴 디스켓을 열려고 하지만 암호가 풀리질 않는다.

사는동안 내내 데이비드와 학습했던 그 모든 암호해결법으로도 풀리지 않고 에이더는 데이비드의 진짜 모습을 찾아 그의 과거를 쫒는다.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들.


데이비드의 진짜 존재를 밝히는 여정은 흥미롭기만 하다. 그리고 그 속에 깃든 어두운 진실들.

그가 살았던 시간속에 깃든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성 정체성의 비밀.


 


에이더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과거의 시간에는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쳐 가는 가장 마지막 열쇠는 바로 데이비드가 개발했던 '엘릭서'에게 있었다.

그곳에 당도하기 위해 에이더는 수많은 암호를 해독했고 때로는 사춘기인 자신에게 깃든 첫사랑의 아련함도 맛보게 된다.


 


참으로 멋진 소설이다. 결국 2000년대의 어느 날에 에이더는 화려한 백조가 되어 아버지인 데이비드가 꿈꿨던 '보이지 않는 세계'로의 비행을 시작한다.

'아바타'의 한계에서 벗어나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세상으로의 화려한 비상.

'보이지 않는 세상-Unseen World-'은 누구나 닿고 싶은 가상현실의 세상이다.

그 곳에서 에이더는 그리운 아버지 데이비드와 만나고 어린시절의 자신과도 만난다.

지금 인류의 과학적인 속도로 언젠가는 닿게 될 세상을 이 소설로 먼저 만나보니 정말 간절하게

닿고 싶은 세상이다.


미스터리를 쫓는 스릴감과 미래의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행복감까지 만끽할 수 있는 이 작품을 더욱 신뢰하는 것은 번역가의 대가가 이 작품을 옮겼기 때문이다.

오늘도 폭염주의보에 지친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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